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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abucks 알바벅스, 시급인생 알바경험 공유

오전 7시, 남의 책상을 닦으며 상상한다. 언더커버라고.

by 델몬트고모 202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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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수금, 오전 1시간 정도 하던 치과 청소 알바를 안 한지 한달이 되었다. 2월의 마지막주 월요일, 오전 9시 10분쯤 치과 청소를 끝내고 다시 또 다른 일터로 향했다. 을지로 지하터널을 통해 일터까지 걸어서 25분이지만. 청소가 힘들었는지 발걸음이 무거워 30분이 걸렸다. 

 

남자 화장실 앞. 팀의 가장 끝, 자리가 서열인 이 조직에서 파견직인 나는 당연히 그 끝에 앉아 있다. 그 끝에 무사히 안착해 노트북을 켜고 탕비실의 공짜 라떼를 내려 한 모금 마시고 한숨 돌리고 휴대폰을 본다. 월수금, 치과 청소를 마친 날에는 원장의 잔소리 문자가 있는지 보는데, 그날은 기가 막힌 문자가 와 있었다. 잔소리가 아닌 일종의 해고 문자. 청소할 일이 많지 않아서 일주일에 1번, 수요일에만 2시간 하기로 했다는 문자.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주며 나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가장한, 매우 일방적인 통보. 고용된 청소 알바생에게 선택권이 없는 게 당연하련만, 매우 불쾌했다. 날 고용한 원장이 일주일 3번에서 1번만 하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청소하는 횟수가 줄어드니 당연히 알바비도 반 이상 줄어드는 상황. 자정까지 알바를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한달 35만 원이 입금되는 것을 보며 버티려 했고 일주일에 1번만 하고 12만 원 받는다면 덜 힘들겠다는 생각에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그 고민을 한방에 해결할 원장의 잔소리 폭탄 문자. 병원 내부만, 보이는 곳만 잘 치우면 된다며 면접 자리에서 별 거  없는 간단한 청소업무라 강조하던 원장이 맞나 싶은 잔소리 폭격. 폭격의 요지는, 병원 외부와 복도, 화장실까지 다 해달라는. 즉, 일주일에 1번만 와서 병원 내부와 외부, 화장실까지 다 해달라는 이야기. 고무장갑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손걸레로 무릎 꿇고 바닥을 박박 닦을 정도로 했건만, 원장은 35만 원이 아까웠나 보다. 그게 아까워서 일주일에 1번만 빡세게 시키고 12만 원 주겠다는 심보. 그게 보이는 순간, 안 하겠다고 문자했다. 그렇게 나는 일자리 하나를 잃었다. 

 

이제는 8시, 최대 8시 30분까지는 잘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35만 원의 소득이 줄겠구나 하는 생각이 반복되었다. 원장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하루 5시간 이상의 취침이 편안했지만 머리 속에서는 35만 원의 알바비가 계속 맴돌았다. 4가지 일자리 중 하나를 잃었으니 3가지 일만 해도 되지 하며 안도했지만 일주일일 보내다가 다시 평일 아침, 10시 출근 전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오전 7시부터 9시, 사무실 청소. 60만 원. 사무실 근처이고 조건도 나쁘지 않으니 우선 지원했다. 사실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연락이 왔다. 더 고민하기 싫고,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포기하는 나의 성향을 생각해 다음날 바로 면접을 보러 갔다. 관리사무소장은 날 보더니 투잡이죠 한다. 네 했더니 다들 요즘에는 투잡을 하더라고요 하며 업무 내용을 간략히 말해준다. 사무실 책상과 의자, 유리창, 문손잡이만 잘 닦아주면 된다고 한다. 화장실 청소나 쓰레기 정리는 기존에 하던 직원이 있고 직원 보조라 지원을 할 때도 있지만 청소나 쓰레기 정리는 하지 않고 앞서 말한대로 책상과 의자만 잘 닦으면 된다고 강조한다. 기존에 하던 업체에서 이걸 제대로 하지 않아 일을 맡게 됐고 4월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업무 설명이 끝나고 질문이 있냐고 하길래 없다고 했다. 치과 청소 해봤으니 이건 쉬울 것이라며 4월 1일부터 할 수 있냐고 묻는다. 할 수 있다고 했더니 그럼 그날 나오고 등본과 통장 사본을 가져오라길래 이메일로 보낸다고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렇게 나는 다시 청소 알바를 구했다.

 

4월 1일, 그리고 오늘. 이틀째다. 사무실 책상과 의자, 유리창, 문손잡이만 잘 닦으면 된다던 관리사무소장의 말이 너무나 무색하게 닦을 것이 너무나 많았다. 컴퓨터, 노트북, TV, 제습기...먼지가 소복히 쌓여 있고 커피나 음료 얼룩이 참으로 많았다. 기존에 청소 업체가 왜 짤렸는지 알겠다. 관리사무소장의 말이 사실과 달랐으나 심각성을 알았는지 도와줄 사람을 붙여줬다.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나 더러운 상태라며. 닦을 것이 많아 시간은 너무나 잘 흘렀고, 종료시각 9시까지 일을 시키지는 않는 관리사무소장의 배려인지 센스인지. 8시 50분이면 일을 끝내고 휴게실에서 30분간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틀간 하며, 괜히 했나 싶었고 잘 차려입은 내 또래 여자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와 자기 자리에 앉아 커피 마시며 여유 있게 일을 보는 모습에 초라하게 느껴지다가도 혼자서 상상했다. 나는 언더커버, 청소부를 가장한 산업스파이라고. 몸이 힘드니 생각은 다른 곳으로. 나는 그렇다. 몸이 힘들수록, 몸을 써야 하는 일을 할수록 머리는 다른 생각을 하며 버틴다. 

 

다시 구한 청소 알바. 새벽 1시에 저녁 알바를 마치고 심야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2시. 씻거나 혹은 안 씻거나, 잠들어 5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6시에서 6시 10분에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타고 7시에 출근도장을 찍고 2시간가량 하는 청소 알바. 언제까지 하겠다는 계획은 없다. 다만 버텨보기로 한다. 언더커버, 청소부를 가장한 산업스파이라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