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삶은 왜 가볍지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몸의 무게도 줄이고 싶지만, 삶의 무게도 줄이고 싶습니다. 내려놓고 쉬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숨만 쉬어도 나갈 돈과 책임져야 할 돈. 그걸 위해 일할 수 밖에 상황이때로는 우울하기도 하지만,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에는 출근 전 치과에서 청소알바를 합니다. 1시간 걸릴 때도 있지만 30분내에 끝나는 단순하고도 간결한 일입니다. 매달 5일이면 35만 원이 입금됩니다. 소득세 차감 없이 그대로 들어오니 기쁨이 큽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평일 주간 직장 출근 전 청소를 끝내야 하기에 아침 일찍 일어날 때 마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하루 30분, 주 3회 일하고 받는 35만 원이 값지기에 감사합니다.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포장알바를 지난달까지 했습니다. 3개월 정도 했습니다. 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알바였습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회 단기 근로계약이었는데 이마저도 주문이 덜 들어오면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일 나오지 말라는 사장님의 톡, 밤에 편히 잘 수 있겠다는 안도간과 일당 8만 원이 사라진다는 아쉬움의 곡예타기. 11월에 일해서 1등급 친환경 보일러 교체하고, 12월에 일해서 100만 원의 여유 자금이 생겼습니다. 이 알바 덕분에 말이죠.
한파가 주춤해진 1월에는 겨우 4일 일하고 끝났습니다. 일 생기면 톡으로 연락하겠다는 사장님과의 대화창은 멈췄습니다. 하루 8만 원을 벌 수 있는 일이 사라졌습니다. 아쉬우면서도 밤에 편히 잘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행복한 밤잠을 자고 일어나면 두려움에 마음이 괴롭기도 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돈들과 마이너스인 나의 소중한 주식들(제발 나중에는 너의 가치를 보여주렴)을 생각하며 알바몬과 잡코리아에 들어가 일자리를 찾아봤습니다.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앉아서 할 수 있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잘 수 있는 일. 이런 조건들을 맞는 몇 가지의 일에 지원했고 면접을 보며 2주를 보냈습니다. 미리 구해놓은 주말 알바는 출근을 앞두고 근무시간이 오전 9시에서 오후 8시가 아닌, 오전 7시에서 오후 3시로 변경되어 주말 오후 3시 이후에 할만한 저녁 일자리도 없는지 알아봤습니다.
평일 오후 4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근무하는 학원 데스크에 지원했지만 연락은 없었습니다. 이때 찾은 일자리가 평일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근무하는 대리운전 전화상담원. 대리운전 요청콜을 접수하고 배차를 진행하는 전화상담원 업무는 약 1년 정도 해봤습니다. 이수근이 광고하는 회사와 용산역 인근 어느 허름한 사무실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이미 콜센터에서 몇 년 정도 일을 해왔던 터인지 비교적 쉽고 간단한 업무였습니다. 최근 몇 개월간 야간 포장알바와 마켓컬리 물류센터 냉동고에서 일하며 몸 쓰는 일이 힘든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간절함을 갖고 지원했습니다. 다행히도 면접을 보게 됐습니다.
면접을 하루 앞두고 채용 조건을 다시 살펴보니 주말 오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근무하는 상담원도 구하는 중이었습니다. 주말 알바가 오후 3시에 끝나서 이 일도 할 수 있겠구나, 면접을 볼 때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면접은 저의 간절한 마음이 무색하게 너무나 쉽고 짧게 끝났습니다. 20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소규모의 여러 대리운전 회사들을 모아 통합 운영하는 상황실 개념의 콜센터를 새롭게 런칭하다보니 경력자들을 채용하는 것이었기에 해당 경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면접이었습니다. 저는 경력자였기에 업무를 할 수 있느냐보다는 어떻게 업무를 했었는지에 대해 질문했고 그 질문에 대한 저의 경험과 응대를 설명했고 그런 부분이 면접관이자 회사 운영자들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 합격했습니다. 입사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다들 대리운전 경력자였고 아예 신입은 채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대리운전 전화상담원으로 일했을 때는 그 일이 참으로 지겹고, 다시는 하지 않기를 바랬는데 경력이 되어 간절히 원했던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참으로 인생은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 괴롭더라도 참아봐야 합니다. 물론 참지 않아서 후회하고 두고두고 괴로운 일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만약 군에서 참고 버텼다면, 지금 이렇게 알바 찾아 삼만리 하지 않았을텐데, 책임져야 할 돈들 생각에 한숨 나오지는 않을텐데...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내 자신이 선택한 일들인데 그럼 책임져야 합니다. 그게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노력 중의 하나가 저는 경제적 책임이라고 봅니다.
삶의 무게 = 돈의 무게. 최근 몇 년간 저는 이 공식이 머리와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임차보증금을 끼고 천 만원이 조금 넘는 돈으로 재개발 지역의 3층 협소주택을 샀고, 1억 7천 5백만 원의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을 샀습니다. 2년 6개월만에 대출금은 갚았지만, 임차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주기 위해 두었던 1억으로 주식을 샀습니다. 전기배터리인데 날지 못하고 떨어졌습니다. 대출금 갚고 나니 300만 원 통장에 남았습니다. 그마저도 부모님 이사한 집에 가구를 사드렸습니다. 3000만 원 쓰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많이 속상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현금은 없고, 급여는 줄어든 상황. 일의 무게가 삶의 무게보다 가볍게 느껴집니다. 삶의 무게=돈의 무게 >일의 무게. 지금의 저는 이 공식이 통합니다. 그래서 4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월수금에는 출근 전 청소알바를 하고,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는 회사에 다니고,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는 대리운전 전화상담원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과자를 먹고 잠에 듭니다. 주말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분양가 20억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시급 15,000원의 알바를 합니다. 다시 오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는 대리운전 전화상담원 일을 합니다.
힘듭니다. 그러나 마음은 편합니다. 돈의 무게가, 조금 아주 조금 덜어졌기 때문입니다. 복권이 당첨된다면 하나의 일만 하고 싶습니다. 취미도 특기도 없기에 일은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4가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이 일들을 조용히, 무사히 잘 해내길 바랍니다. 그래서 돈의 무게,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