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주식은 셀트리온이었다. 그 때 내 신분은 군인이었고 직무는 해군 모 부대의 정훈장교. 부대 장병 교육이 주 업무였으나 공보과장이 부재이기도 했고 짬이 안 되는 초급 장교이다보니 신문 스크랩 업무는 나의 몫. 오전 6시 30분에서 7시까지는 스크랩한 결과물을 부대장 당직병에 전달해야 했다.
100% 수공업.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신문에서 군 관련 기사를 찾고 그 기사 부분을 잘라내 B4용지에 풀 발라 붙이고 복사하는 수공업 과정이다. 그 작업을 끝낸 신문은 버려진다. 그러나 나는 그냥 버리지 않고 기사를 읽었다. 신문의 모든 기사를 읽은 것은 아니고 사설과 경제면을 열심히 읽었다. 사회와 단절된 군생활이었지만, 돈에 있어서만큼은 사회와 단절되지 않기 위해 신문의 경제면을 특히 열심히 읽었고 나만의 스크랩도 만들었다.
당시에 세금 떼고 받은 월급은 150만 원. 숙소가 제공되니 주거비가, 군복을 입으니 옷값이 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지금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후회할 짓이나, 먹는 것까지 아끼며 돈을 모았다. 월급의 90% 이상을 저금했다. 그리고 목돈이 마련되면 정기예금에 가입하고. 주식하면 망할까 두려워 주식은 하지 않았지만 펀드도 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지식을 습득하고 그걸 활용한 투자라기 보다는 묻지마 투자였던 것 같다. 원금이 보장되는 적금과 정기예금이니 돈도 묻고, 과연 얼마의 수익이 날지를 묻지 않는.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펀드도, 결국에는 버티면 내가 투자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 운용방식이 어떤지, 판매수수료가 얼마인지도 묻지 않았다. 다행히도 적금과 정기예금, 펀드 모두 원금 보전과 함께 수익을 냈다.
그럼에도 자꾸 주식에 관심이 갔다. 경제면을 읽으면 읽을수록 든 생각은, 월급을 모아서 부자되기는 어렵겠다, 그리고 주식을 해야 돈을 벌 수 있겠다였다. 내가 주식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소액 투자와 내 마음대로 매수매도였다. 특히 내 마음대로 종목을 선택해 살 수 있고 팔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이익을 보든, 손해를 보든 온전히 나의 자유의지로 주식을 팔 수 있다니. 당시로서는 놀라웠다. 적금과 정기예금은 모두 기간이 충족되야 약정한 금리와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고, 펀드도 일정 기간동안 불입하고 운용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그런데 주식은 장 운영시간에 내가 종목을 고르고 사고 팔고. 시장에서 물건 사는 것만큼 쉬운데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원금이 보장되지 않음에도 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무엇을 사야 돈을 벌 수 있는가이다. 그걸 나는 신문 경제면에서 찾고자 했다. 나보다는 정보의 우위에 있고, 전문가들의 글이 실리는 신문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따.
특히, 신생기업 관련 기사와 창업가의 인터뷰를 열심히 봤다. 왜냐하면 대기업처럼 정보가 많지 않기에 주가가 비싸지 않다. 싸다고 좋은 것은 아니나, 가치평가 전 혹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 해 시장에서 외면받은 주식이라 소액으로 주식수를 많이 확보할 수 있고 상승세도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단점이 될 수 있지만 한달 월급 정도는 없는 셈치고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산, 나의 첫 주식은 셀트리온이었다.
어떤 신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서정진 그리고 바이오시밀러. 이 두 단어는 정확히 기억난다. 신문의 한 귀퉁이에 나온 인터뷰였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바이오시밀러에 진출한 기업가의 인터뷰. 나는 그 인터뷰에서 희망을 봤다.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지식은 없으나 앞으로는 오래 살 것이고, 암을 비롯한 질병은 치료할 수 있고 그 치료제의 저렴이를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다는 서정진씨(그때는 회장인지 뭔지 그분의 직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그 사람을 믿고 셀트리온 주식을 샀다.
지금이야 휴대폰에 증권사 어플을 설치하고 실시간 주식을 살 수 있지만, 내가 살았던, 내가 군인이었던 그 때는 그렇지 않았다. 증권사 객장에서 계좌를 개설하고 매수해야 하는 때였다. 진해에는 증권사가 없어 휴가를 내서 창원까지 가서 증권사 계좌를 게설하고 셀트리온 주식을 샀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1주당 17500원에 샀던 것 같고, 300만 원치 샀던 것 같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전역할 때까지. 인터넷이 되지 않는 근무환경 속에서 주식창을 볼 수도 없고, 증권사 객장을 방문하거나 증권사에 전화해 매일 주가를 확인할 상황도 아니었다.
전역 후, 언니집에서 얹혀 살기로 하고 서울에 올라온지 일주일도 안 돼 언니와 싸우고 나와 전세집을 구해야 해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도 나는 주식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때는 새로운 직장에서 버티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잊고 있었다.
그리고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직장을 나와, 4년의 군복무와 2년의 프리랜서직 취재업무 끝에 무직자가 된 어느 겨울날. 신문을 보다가 세계적인 제약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셀트리온 기사를 보게 됐다. 그제서야 내 주식이 생각났고 증권사 객장을 방문했다. 그리고 2배 이상이 된 나의 증권잔고를 발견했다. 그 중 반은 매도했고 반은 그냥 두었다. 이미 손해 본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남은 반이 얼마큼 올라갈지 궁금해서였다.
얼마나 올라갈지 궁금해서 묻고 있던 셀트리온은 결국 코로나 시절 다 팔았다. 현재까지도 나의 주식 투자 종목 중 가장 큰 수익이자 장기 보유 종목이었다. 그리고 다시 셀트리온제약을 샀고 한달 정도 보유해 30% 수익을 내고 매도했다. 이제 셀트리온 관련주는 하나도 없다. 내가 판 이후에도 셀트리온은 잘 나가서 이제 넘사벽이 되었다.
금리인하 기조가 영원할 줄 알고 나는 부동산 대출을 받아 서울에 집을 샀고, 인천집 전세보증금으로 주식을 샀다. 대출금은 완제했으나 주식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셀트리온도, 전세보증금으로 산 주식도 모두 신문에서 기사를 읽고 내가 선택한 종목이나 결과는 반대인 상황. 현재로서는 그렇다. 그러나 주식은 팔 때까지는 그 결과가 없기에(마이너스지만 아직 매도하지 않았으니까요) 셀트리온처럼 될 수도 있다.
금리상승과 함께 찾아온 주식 하락장. 그속에서도 누군가는 돈을 번다. 내가 그 중 하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대출금 갚느라 돈은 모으는 족족 다 은행으로 가 버렸고, 이제 돈이 모아지고 있지만 주식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우선 주식을 하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내가 조절할 자신이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주식을 살 것이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인플레이션 시대에 월급생활자가 소액으로,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재테크는 주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도 있지만, 그건 정말 내가 이해 및 공감이 불가한 영역이라 할 수가 없다.
주식을 사야 할 때, 망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종목을 찾기 위해 다시 신문을 읽는데. 아니 본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냥 기사를 보고 지나치는 수준이랄까. 그런 내게 또 유튜브가(야식과 폭식으로 망가지는 몸에 경고를 보내듯이 건강과 다이어트 관련 영상을 보여주듯이) 유용한 채널을 알려줬다.
큰 돈 버는 작은 습관, 한경코리아마켓.
https://www.youtube.com/live/hoG1VGWXvro?si=1c_64dTF5KkExDTI
식습관을 개선해 내 몸을 챙기듯이, 유튜브로 경제 기사를 읽으며 내 돈을 챙길 준비를 해야 겠다. 그럼 언젠가는 나도 전원주 선생님처럼 부자 할머니로 기억되지 않을까.
#셀트리온 #월급쟁이 #주식 #한경코리아마켓 #전원주 #부자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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