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용 새우깡을 한 번에 먹을만큼, 밥 대신 오징어땅콩 과자를 매일 먹으며 우울한 군복무를 버티던 시절이 있었다.
과자가 주식이요 과자와 아이스크림 등 정크푸드와 스티릿푸드 폭식과 절식, 3시간 이상의 달리기로 스트레스를 풀며 4년의 군생활을 버티고 사회로 나오며 이대로 가다간 미칠 것 같아 과자와 절교를 선언했다. 그러나 선언이 행동이 되고 습관이 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힘들었다.
사실 내가 과자를 좋아하고 그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던 건 값이 쌌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과자값이 작은 봉지도 2000원에 가까우니 우리 동네 폭탄세일 채소 가게의 오이보다 비싸지만 그때는 오징어땅꽁 작은 봉지 3개를 묶어서 천 원에 팔았고 새우깡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돈. 비사관학교 출신으로 기회조차 공평하지 않은 해군 내부의 조직 문화와 부조리를 뼈저리게 느끼며 장기복무는 포기했지만 퇴역 시(여성 자원입대라 전역이 아닌 퇴역 장교로 분류) 뭔가를 손에 쥐고는 갖고 나가자 결심했다. 그것이 돈이었고 1억 모으기에 도전했다.
왜 그리도 무모하고 무지했나 싶지만 결국 4년 복무 후 1억 3천만 원을 모았다. 오로지 아끼고 아껴 적금해 모은 돈이다.
그 돈을 기반으로 퇴역 전 저금리 군인대출을 풀로 받아 서울 올라올 때 전세집 대신 집을 샀다면 좀 더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후회되지만 자가도 있고 월세도 받고 있으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위로한다.
열심히 하든 그렇지 않든 뭘 어떻게 하든 정해진 월급. 수입은 내가 진급할 때는 오르지만 이미 정해졌고 군인이니 겸직 불가.
진해 촌 구석에서 알바 했다가는 소문이 진실보다 더 빠르게 이상하게 퍼질 것이 뻔하기도 했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12시간 이상 버티다 과자 폭식, 그리고 후회와 자학으로 야밤 달리기로 몸과 마음이 지쳐 뭘 할 힘도 없었다.
1억 모으려면 결국 지출을 줄여야했고 숙소는 관리비 1만 원에서 3만 원 정도니 공짜에 가깝고 군복만 입고 일하니 옷도 살 이유가 없고 결국 먹는 것을 줄이자는 결론.
다이어트에 집착했던 때라 하루 한끼만 먹자, 하루 3천원만 쓰자며 과자가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 다이어트 한다며 과자가 웬말인가?
나의 군 시절 절반은 과자와 커피믹스로 점철되어 있다.
커피믹스로 하루 종일 버티던 때도 있었다. 공짜였고 추웠다. 추워도 너무 추운 사무실(일제 시대 건물에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어 수리 불가)과 지하 벙커.
그때는 덜 뻔뻔해 다른 사람들과 뭘 먹는 것도 부담되었고 먹는 행위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사무실에 항상 있는 커피믹스를 한 잔씩 홀짝홀짝 하며 배고픔을 견뎠다.
커피믹스에 초코파이와 건빵까지 있으면 천국이다. 간부에게는 초코파이와 건빵이 제공되지 않지만 당시에 내가 밥 안 먹는 사람으로 유명세를 떨쳐 이거라도 먹어야 살지 않겠냐며 챙겨줬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아이유가 사무실 커피믹스와 설거지 알바 후 남은 음식을 챙겨 와 단칸방에서 혼자 먹는 장면을 보며 적잖이 충격받았다. 나의 과거 같아서. 물론 난 사채도 없고 부모님도 계셔서 본가에 가면 상다리부러질 정도로 엄마밥을 먹어 영양실조는 걸리지 않았다. 단지 내가 1억은 모으고 군에서 나가자 다짐했고 월급의 90%를 저금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이렇게 지독하게 했는데 4년간 1억 못 모으면 그게 이상하지 않나 싶을만큼 그때의 나는 참으로 독했고 미련했다.
지독한 절약 습관, 특히 먹는 것에 돈을 아까워 하는 것은 다이어트 집착과 만나 퇴역 후에도 지속되었다. 만만할 것이라는 사회는 군보다 더 가혹했고 치열했다. 그 치열함 속에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야 했는데 반대로 했다.
많이 일하고 그럼 수입은 늘고 그만큼 더 모을 것이라는 기대. 여러 직장과 알바를 병행하며 아꼈지만 자산은 나의 노력에 비해 크게 늘지는 않았다.
2번의 전세 끝에 대출없이 서울 독립문역 근처에 엘레베이터 없는 빌라 하나 장만했다. 그곳에서 동생 데리고 살며 장가도 보냈고 내 집이라 마음 놓고 살았다. 여유가 생겼고 다이어트 집착 끝에 40킬로대의 꿈의 체중을 만나고 건강한 음식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저렴하면서 건강한 음식.
사실 여유보다는 중간에 일하러 이라크에서 6개월 이상을 보내며 체질이 변했다. 심각한 질병이 생긴 것은 아니나 스스로가 느꼈다. 내가 건강하지 않다는 걸. 꿈의 체중은 내게 빈혈과 치질, 저체온증을 선물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내 안에 없으니 밖에서 얻어야 했고 음식에 대해 생각하며 먹게 되었다.
이라크까지 가서 터키, 말레이시아, 미국 등 외국 온갖 과자까지 섭렵하고 나니 더 이상 땡기지가 않았다. 매운 것에도 약해져 떡복이와 김치도 멀리 하게 되었다.
대신 빵과 라떼가 주식이 되었다. 돈 아까워서 사무실 커피믹스만 먹었는데 누군가 사준 스벅과 커피빈 라떼를 마셔보고는 돈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유가 생기면 매일 라떼 한 잔은 마시자며 마음 속에 두다가 사람 죽어 나가는 이라크에서 일하고 돌아와서 행동에 옮겼다. 어제 같이 일하고 이야기 했던 이라크인 동료가 총에 맞아 죽어 다음날 돌아오지 않은 걸 보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한국 돌아가면 1일 1라떼를 하리라 결심했다.
결국 살아 돌아왔고 인천공항 내리자 마자 라떼를 사 마셨다. 아침에 눈 뜨면 따뜻한 라떼 마실 생각에 출근길이 힘들지는 않았다.
라떼 한 잔과 빵. 인생이 살만했다. 위로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과자와 이별했다. 라떼가 소울푸드가 되니 과자중독에서 벗어났다. 1년 이상을 과자에 입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힘들고 지칠 때는 과자가 생각났고 위로받았다. 가끔 새우깡 한봉지와 라떼를 마시며 꿈을 그리고 더 나아진 내일을 약속했지만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 과자를 적게 먹었다. 과자값이 많이 오른 영향도 있다. 더이상 과자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밥 대신 먹던 값싼 음식이 아니었다.
올해 4월초 감기가 심하게 걸린 후 후각이 이상해져 커피향이 느껴지지 않고 라떼도 쓰게 느껴져 영양제와 과일, 채소를 먹기 위해 노력했다. 이전에는 좋아하지 않던 오렌지와 파인애플을 찾게 되었다. 파프리카와 당근이 달았다.
아프고 나니 건강한 음식을 자연스럽게 찾아 먹었고 매일 먹던 빵도 먹지 않았다. 커피 대신 허브차를 마셨다. 허브향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달간 나름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기대했다.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그런데 지난 주부터 여기저기 아프더니 결국 하루에 병원 2곳 다니기, 항생제 수액 맞기, 삼시세끼와 약 먹기를 하고 있다. 의사가 잠 못자냐며 몸에서 면역력 약해지면 나오는 균이 나왔다며 걱정. 그 어는 때보다 숙면 모드인데 말이다. 참으로 이상하다.
건강한 음식 먹고 10시간 이상 숙면하는데도 이렇게 아픈 현실에 나는 다시 과자를 시작했다. 병원 진료 받고 나면 새우깡이 심하게 땡기기 시작했다. 다른 과자는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새우깡.
아파서 속상한 것보다 병원비와 약값 나갈 돈으로 내가 먹고 싶은 거 마음놓고 쓰지 못한 거. 그래서 다시 과자를 먹고 있다. 몸은 피폐해도 마음이 그렇지 않으려면 꼴리는대로 먹자. 그게 새우깡이다. 약 먹고 새우깡 먹으면 다시 힘이 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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