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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부정

by 델몬트고모 2024.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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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부터 부정의 시작.

아들이라 굳게 믿고 10개월을 배속에 품었는데 낳아보니 딸.

엄마는 동네 아줌마가 딸인데 잘생겼다며 안아보라는 손길을 뿌리치고 방구석으로 아이를 밀었다.

 

외모와 성격이 많이 닮았건만 아빠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싫어했다.

"너는 목소리가 왜 이리 크니? 너는 식탐이 왜 이리 많니? 너는 왜 중간이 없니? 언니처럼 똑똑하지 않니? 

동생처럼 착할 수는 없니?...."

날 닮아서 그렇구나, 날 닮아서 이쁘구나, 너는 이래서 좋구나...들어본 적이 없는 긍정의 말들.

나이 마흔 다섯에도 이런 소리를 듣고 있다. 여전히 날 부정하는 아빠의 말들. 

어린 나였다면 상처 받고 다락방에 올라가 숨죽여 울었겠지만 지금은 단절을 선택한다.

 

아빠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 또한 아빠를 부정하며 소통하지 않는다. 

중간에 낀 엄마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어차피 엄마 곁에 있는 아빠가 또 엿듣고 잔소리를 할테니.

아빠 대신 죄책감을 짊어진 엄마는 불쌍하지만 나는 내가 더 불쌍하다.

일흔 넘어서도 자식에게 상처 받는 말들을 하는 남자를 자신의 남편, 아이들의 아빠로 선택한 엄마가 밉기도 하다.

 

태어날 때부터, 한창 사랑받아도 부족한데 어릴 때부터 나에 대한 부정과 질타로 나는 천덕꾸러기 신세.

날 사랑의 눈길로 봐주고, 밥 많이 먹어도 이뻐해주던 외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자살했을지 모른다.

먹고 살기 힘든 상황 속에서 날 먹여 살려준 엄마는 때린 만큼 사랑도 줬고, 맞아도 엄마 품속을 원할만큼 엄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이다.

그러나 아빠는 다르다.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 말에 의하면 아빠가 좋아서 몸을 떨 정도였다는데...왜 나는 아빠를 두려워하고 눈치 본 기억만 나는지...

 

나는 어린 시절의 내가 불쌍하다.

아빠의 지적과 상처받는 말들이 아빠 입에서 나오기 전에, 그런 말들에 대해 엄마가 반박하며 부부 싸움으로 번질까봐

쉼없이 눈치 보고, 집보다는 학교가 편했던, 최초의 칭찬이 날 낳아준 부모가 아닌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을 통해서 들으며 나 자신이 바보천치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의 안도감.

땅밑으로 꺼지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으면 했던 어린 내가 불쌍하다.

 

어릴 때부터 눈치보던 나는 중년이 되어서도 눈치를 본다.

상대방이 날 싫어하는 건 아닌지... 날 싫어하는 기색이 보이면 단절한다.

죽을 때까지 못 고친다. 고칠 생각도 없다.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키워줬기에.

 

아이는 없지만 조카 2명이 있다. 나는 그들의 부모에게 이야기한다.

애 눈치 보게 하지마, 갖고 싶은 거 갖게 해...

내가 이야기한다고 들을 그들이 아니지만 그들이 조금이라도 조카에게 눈치를 주면 속상하다.

어른이 되어서 나처럼 눈치보지 않고 당당하게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고모, 이모의 마음이다.

 

지난달 코로나, 대상포진. 태어나 다 처음 겪는 질병. 

여기에 아빠가 내 말투를 두고 쏟아낸 부정의 말들. 

끝까지 듣지 않았다. 더 상처받기 전에 그 부정의 말들을 부정하고 단절을 선택했다.

 

생존에 대한 부정. 다시 고개를 들지만 스스로 죽기에는 먹고 싶은 게 많다.

내가 책임질 일들도. 내가 책임질 일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나이들수록, 노년에 가까워질 시간들을 생각하면 책임있는 삶을 외면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