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실제이면서도 소설이다. 나의 기억에 의해 각색된 소설일 수 있으니.
우리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입학해서는 국민학교 졸업할 때는 초등학교인 호돌이 티셔츠를 입고 다녔던 80년생의 나는 육성회비가 밀려서 선생님이 따로 불러도 우리집이 가난한지 몰랐다. 먹성 좋은 아이라 김치에 밥만 줘도 맛있게 먹었고 시내버스 운전사였던 아빠는 자정이 넘어 퇴근할 때 간식을 사오셨다. 그래서 배 고픈 기억은 없다. 배고프지 않고 따뜻한 방에서 잠 자고 가끔이지만 통닭, 돈까스도 사주시는 부모님이 곁에 계셨기에 우리집이 풍족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동네 다른 아줌마들과 다르게 시내에서 원피스와 샌들, 헤어핀, 목걸이 등을 사와 날 꾸며주셨다. 원피스에 뭘 묻는 걸 용납하지 않으셨던 우리 엄마는 주방과 욕실의 용도가 한곳에 있던 좁디 좁은 공간에서 물을 뎁혀 저녁마다 나를 비롯한 아이 셋을 고무 다라에 한명씩 한명씩 넣고 머리부터 발끌까지 씻겼다. 내 몸 하나 그렇게 씻어도 진이 빠지는데 아이 셋을 하나 하나 얼굴과 몸에서 빛이 나게 씻기고 잠옷을 입혔던 우리 엄마. 그때는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이미 그때의 우리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어보니 경이롭다고 느껴지고 한없이 미안하다.
그런 엄마를 뒀던 나는 사립 유치원에 갔다. 당시에는 보통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하루종일, 엄마가 일 끝내고 늦은 저녁 아이들을 찾아오는 탁아소 같은 곳에 다니고 전업주부 엄마를 둔 아이들은 유치원이 아닌 학원을 다니는게 보통이었다. 우리 동네는 그랬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세 아이를 모두 사립 유치원에 보냈다. 한누리유치원.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이화여대 유아교육과를 나온 원장님이 운영하는 2층 단독주택. 봄이면 개나리꽃 피고, 여름이면 원생들이 수영하게 간이풀이 만들어지고, 가을이면 피크닉 놀이를 하고,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던 큰 마당이 있던 유치원. 셔틀버스를 타고 먼곳에서 아이들이 오던 사립 유치원.
그곳에 입학하던 첫 날부터 문화 충격을 받았다. 우선 동네에서 나름 이쁘고 꾸미는 아이였던 나보다 훨씬 이쁘고 더 좋은 원피스와 구두에 , 화려한 헤어핀과 헤어밴드를 한 또래 여자 아이들을 만나니 내가 초라하게 느꼈다. 다음으로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의 모습. 난 집이 유치원에서 아이 걸음에도 10분이면 되는 곳에 살아 혼자서 왔는데 다른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우리 엄마와는 다르게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귀와 목에는 뭔가가 빛나고 있고. 쌀집을 하더 우리 엄마는 짧은 파마머리, 민낯, 바지인데.
그러나 가장 큰 문화 충격은 따로 있었다. 음식. 김치와 김, 아빠가 쉬는 날이면 계란후라이가 더해졌지만 배불리 먹었지만 김치와 김, 찌개, 밥이 주식이었던 우리집. 유치원 입학 날 뭔가를 먹으라고 주는데 빵과 우유. 길거리에서 파는 풀빵은 먹었지만 내 얼굴보다 큰 노랗고 동그란 빵.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옆 친구가 봉지를 뜯고 한입 베어물길래 따라 하니 안에서 뭔가가 흘러나온다. 노랗고 질컹한. 그러나 달콤해 싫지 않았다. 아니 맛있어서 단숨에 반을 먹었다. 이렇게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난 것이 있다니. 집에 있는 동생이 생각났다. 우유는 아예 열지도 않았다. 동생 생각나서.
반만 먹고 남겨둔 빵과 우유를 유치원 가방에 넣었다. 그 이후 내 머리 속은 이 맛있고 신기한 것을 동생에게 빨리 갖다주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차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다가 드디어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가방을 메고 유치원을 나오는데 원장님이 내 옆에 오시더니
"간식은 유치원에서만 먹어야 해요. 집에 가지고 가면 안 돼요~"
난 대답 대신 원장님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집을 향해 뛰어갔다. 원장님이 뭐라든 빨리 동생입에 달콤한 뭔가가 흘러나오는 빵과 우류를 갖다 주고 싶어서.
집에 오자마자 엄마를 보며 가방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며
"엄마. 이거 봐~ 신기한 빵이야. 빵에서 콧물이 나오는데 달아"
엄마는 얘가 뭔 이상한 소리를 하지 하며 쳐다보다가
"유치원 재미있었어? 뭐 배웠어?"
난 배운 것도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어 대답은 않고 방 구석에서 자동차 장난감을 갖고 노는 동생 곁으로 갔다.
"애기야~ 이거 먹어봐~ 얼른! 엄청 달고 맛있어"
동생은 이름이 있음에도 막내에 딸 둘 낳고 낳은 귀한 아들이라 애기 아니면 아들로 불려졌다. 나도 엄마 아빠 따라서 동생을 애기라고 불렀다.
순한 동생은 내가 코앞까지 들이밀고 거의 강제로 입에 들이밀던 빵을 금방 한입 베어물었다. 동생 턱으로 노란 콧물 같은 것이 흘렀다.
"맛있지? 달지?"
말은 못했던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엄마는 동생 턱에 흐른 노란 콧물 같은 것을 자신의 손으로 닦아 먹어 보셨다.
"다네~ 콧물 같은데 다네"
엄마와 나는 잘 먹는 동생을 보며 그 빵의 이름이 뭔지 궁금해했다. 엄마도 나도 동생도 처음이었던 빵.
"콧물빵! 엄마~ 콧물 나오니깐 콧물빵 아니냐?"
엄마는 모르겠다며 아빠 퇴근해서 오시면 물어보자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 아빠는 주말이면 동네 제과점에서 빵을 사오실 정도로 좋아하셨다. 아빠가 사온 빵에 이렇게 달콤한 콧물이 나오는 것은 없었지만, 아빠라면 알 것 같았다.
버스 운행을 마치고 자정이 넘어 돌아온 아빠를 기다린 나는 열심히 말 했다.
"아빠, 유치원 갔는데 빵을 줬는데 콧물이 나와. 근데 엄청 달고 맛있어"
이미 나와 동생이 다 먹어버려 빵은 없어 열심히 설명했다.
아빠는 새벽에 나가 하루종일 도로에서 버스 운전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밤늦게 돌아와 피곤한 몸을 씻고 나오시며
"어떻게 콧물이 나와? 빵에서?"
"진짜야~ 콧물이 나와. 근데 엄청 달아"
아빠는 나의 말이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엄마를 쳐다보셨다.
"콧물빵. 얘가 그러네. 콧물빵이라고"
아빠는 엄마의 말을 듣고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시다가 잠자리에 드셨다.
하루밤 자고 다시 나는 유치원에 갔다. 또 콧물빵이 간식으로 나오길 바라면서. 그러나 콧물빵은 안 나오고 또 이상한, 내가 태어나 처음보는 뭔가가 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햄버거와 밀크쉐이크였다. 1년 다녔던 유치원은 매일매일 오늘은 어떤 간식이 나올지, 그 이름은 뭐지 하며 보맨 시간들이었다. 우리 엄마는 그런 내게
"뭐 배우라고 보냈더니 종일 먹는 이야기만 하네. 아이구"
같은 유치원을 세 아이 모두 보냈는데 나만 집에 돌아오면 엄마에게 뭐 먹은 이야기와 함께 남은 간식을 싸갖고 와 동생을 줬으니 엄마가 이런 날 한심하게 생각할만도 하다. 언니와 동생은 뭐 배웠는지, 어떤 친구를 만났는지, 어떤 놀이를 했는지 말하는데 난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간식 이야기만 하고 원장님과 선생님이 말리느데도 반은 먹고 반은 집에 가져와 동생을 줬으니 말이다.
콧물빵의 이름은 슈크림빵이었다. 역시나 주말이면 제과점에서 빵을 사오셨던 아빠가 주인 아줌마에게 내가 설명한대로 이야기하니 바로
"아. 슈크림이요. 그 콧물 같은 것이 슈크림이에요."
팥빵과 식빵, 도너츠를 사오시던 아빠의 빵봉지에는 슈크림빵도 함께 였다. 그 빵을 먹은 아빠는
"진짜 콧물 같네. 우리 딸 말이 맞네"
슈크림빵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우리 가족은 아직도 콧물빵이라고 한다. 내가 남겨온 빵을 먹으며 웃던 동생은 이제 아빠가 되어 자신의 아들에게 그 빵을 사주며 내 이야기를 해준다.
"고모가 유치원 가서 먹었는데 콧물이 나오는데 너무 맛있어서 남겨왔던 빵이야. 콧물빵이라면서. 나중에 할아버지가 제과점에 가서 물어보니 슈크림이래. 이 노랗고 달콤한 게 슈크림이래"
슈크림. 아니 콧물빵을 먹은 조카는 웃으며 말한다.
"그렇네~ 콧물인데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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