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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난하다고 느낄 때

by 델몬트고모 2025.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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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 않다. 그런데 평일 주간 직장에 갈 때면 가난함과 박탈감을 느낀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이게 날 괴롭게 하고 관두고 싶게 만든다. 어차피 이곳에서의 내 유효 기간은 6월까지이다. 
 
1년 9개월 전, 이곳에 파견직으로 왔을 때는 대기업이 주는 안정과 복지를 기대했다. 4시간 단시간 파견직이니 연봉이라고 말하기에 참으로 무색한 급여지만, 4대 보험이라는 사회적 경제적 안전망과 높은 시급은 지금까지 날 버티고 참게 했다. 업무를 시작할 때는 하루 4콜이었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4콜도 오지 않는 극히 적은 전화량, 전화가 온다 해도 관련 업무가 아니라 상담 불가이거나 담당자 전달 및 연락, 민원이면 죄송하다가 말하고 끝이다. 전화상담 밥벌이 8년 이상 하다 보니 죄송하다고 끝나는 전화는 애교다. 너 누구냐, 쌍욕으로 시작해 관리자 바꿔라...기타 등등. 내 선에서 끝나지 않는 전화와 피드백, 관리자가 없다.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지금까지 버텼다.
 
그러나 매일 관두고 싶다. 내가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 없는 파견직이라 선택권도 없다만, 참으로 매일매일 나의 초라함에 도망가고 싶다. 이곳에서. 
 
11시 30분터 1시까지 점심 시간을 유동적으로 운영하는 것 같다. 같다는 말은 누구도 내게 점심 시간이 어떻게 되고 운영되는지 말한 사람이 없다. 그럼 나는? 그걸 묻고 싶지도 않지만 난 4시간 단시간 근로자라 30분 휴게만  있다. 12시부터 12시 30분으로 정해져 있다. 눈치상 11시부터 2시까지 탄력적으로 알아서들 점심 시간을 갖는 것 같다. 일주일 근무시간인지 한달 근무시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고, 이것도 눈치상 정규직 계약직 풀타임 근로자들이 지들끼리 이야기 하는 것 보니 총 근무시간만 채우면 되는 방식이라 알아서들 점심 시간을 여유있게 보내는 것  같다. 
 
이전에는 몇 번 점심 시간 팀 회식도 가고 했는데 가 보면 나만 모르는 이야기들을 지들끼리 나누고 웃고 하니 음식이 목구멍에서 걸려 가지 않았다. 무슨 선심 쓰듯이 같이 가시죠 하길래 점심 시간이 30분만 있다고 하니, 또 선심 쓰듯이 오늘은 예외로 하세요 괜찮아요 이런다. 내가 안 괜찮거든. 니들이 정한 근무 시간과 휴게 시간 꼭 지키라고 잔소리 할 때는 언제고... 무대 위의 가장 하찮은 역을 맡은 배우의 방백이 계속된다.
 
오늘도 점심 시간을 마치고 온 남자 직원 몇 명이서 날씨 이야기 하며 공 치러 나간다고 한다. 골프 치러 필드 나간다는 뜻이다. 스크린 골프장과 법인 대리운전 알바를 통해 익히 들은 말들이다. 내가 해봐서가 아니라.  공 치러 간다고 이야기를 꺼낸 남 직원은 루이 통통 명품이 유니폼이다. 외모와 체형은 배고파서 쓰러질 것 처럼 생겨서 루이 통통 셀프 앰버서더인가 싶을 정도로 그 브랜드만 입는다.  그리고 내 옆 자리 스티브 연 닮고 그나마 가장 친절한(외모부터가 매우 친절한) 남 직원은 전세지만 임신한 아내를 위해 청담동으로 이사간다고 하고, 본가도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라고 하는 거 보면 부유한 것 같다. 특정 브랜드 앰버서더는 아니지만 이 직원도 명품이나 편집샵에서나 살 수 있는 비싼 브랜드를 입는다. 
 
이 둘 대화에 끼어든 내 뒷자리의 낙하산. 대기업이라도 다들 총명하고 매너 있지는 않는데, 얘는 유독 이상할 정도로 말도 어눌하게 하고 팀내에서도 병신 짓을 해서 사수가 뒷처리 하는 걸 자주 목격했다. 뒷처리 하던 사수가 참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점심 시간에 휴대폰으로 유튜브나 영화 보면서 혼자서 크게 웃다가도 사수가 오면 아픈 흉내 내어도 먼저 병원 다녀오라고 하고, 언제인가는 이 자식이 늦게 출근했는데 아버지가 태워다 주는데 차 사고가 났다고 해도 아버지 다치지 않으셨니 하며 걱정하고...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는데. 역시나 낙하산이었다. 사수도 그걸 알아서 착하게 군 것인가 싶었지만 그 사수는 팀을 떠나서 가끔 회사 로비에서 날 봐도 인사를 건네는 거 보면(나같은 파견직에게도 인사하는 거 보면) 착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이상한, 톰 갈색이라는 특정 브랜드(양아치들이 입어서 나락간 줄 알았는데)만 입는데 참으로 태가 나지 않는다. 얘 집안 수준(조기 유학에, 아버지가 회사 임원과 친한 그래서 아들 자리를 만든)이면 분명 진품인데 내 눈에 짝퉁 입은 중국애로 보인다. 2:8 가르마(비싼 바버샵 가서 했을텐데)와 톰 갈색 옷, 신발. 병신 짓 하고 매너 없는데 스타일도 일관성 있다.  이 재수탱이가 저 둘의 대화에 끼어들며 자기도 이번 주말에 공 치러 간다고 한다. 
 
전방, 측면, 후방에서 부자집 도련님들 저 세상 이야기. 저들이 입은 옷 한 벌이 내 한달 급여보다 높을 것이다. 저들이 공 치러 나갈 때 난 주말에도 김밥 먹으며 대리운전 접수 알바 한다. 참으로 인생 드럽다. 
 
날 비참하게, 가난하게 만드는 이곳을 관두고 싶지만 돈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 투성이다. 3개월 후 백수가 될까봐 지금도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남자 화장실 옆에 있는, 사람 치졸하게 만드는 이 자리에서 뭐하고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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