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일까 싶다가도 몸과 마음 불싸르며 뭔가를 했던가 싶어 그건 아니다 싶다가도 1억 넘는 부동산담보대출 갚느라 밤잠 안 자며 돈 번 기억이 떠올라 번아웃인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현재는 의욕이 없다. 먹고자 하는 의욕만 충만할 뿐, 이외에는 그저 그렇다.
허리도 아프고, 사춘기 때도 안 나던 뾰루지인지 여드름인지 뭔가가 얼굴에 나니 무념무상이다. 신체적 변화가 오면 아무 생각이 없다. 생각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그런 것 같다. 디스크 문제라 생각하고 신경주사를 맞고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으며 부지런히 실비 보험 청구까지 했건만 나의 허리 뒤쪽은 쑤시다. 의사라고 다 아는 게 아니고(본인들 전공이나 자신있는 쪽으로만 생각하고 치료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들은, 그래서 의심해야 한다)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병원을 옮겼다. 물리치료가 성의없고 시끄러운 병원 분위기에 지친 이유도 있다.
의사도 친절했고 무엇보다 물리치료가 마음에 들었던, 이전에 다니던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역시나 디스크 문제보다는 허리 인대 쪽 문제인 것 같다며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대기 시간 빼고 1시간 정도 되었던 치료 과정, 병원을 나오면서 이미 내 허리 뒤쪽의 진통은 사라졌다. 신경주사로 해결되지 않던 진통이 사라지니 살 것 같다. 의욕도 생긴다. 그러나 몸을 사려야 한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본가에 내려가면 할 일들이 있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죽은 사람보다는 살 사람, 즉 아버지의 아내이자 나의 엄마를 위해 제사 종료를 선언하셨던 아버지(할머니 살아 생전에는 입으로만 효도하던 고모 두 분이 뭐라 하셨지만 누나들은 엄마 똥 한 번 치우고 목욕 시켜 드려 봤냐, 우리 애들은 할머니 똥도 치우고 목욕도 시켜 드렸다며 누나들은 자격 없다며 무시하셨다) 덕에 집안에 제사도 차례도 사라졌다. 그러나 조상의 묘를 보살피는 정성은 제사를 하던 때보다 더 해졌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죄책감이 엄마에게는 있었다. 아버지는 죽은 사람을 위해 산 사람 고생하는 것은 싫다고 했으나 연상녀 엄마의 고집을 꺽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사와 차례 대신 명절이나 할머니 돌아가신 때에는 묘를 찾아 벌초를 하고 단촐하나 음식을 올린다.
음식이라고 거창하게 하지는 않는다.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이 먹어도 좋은 음식들을 준비한다. 고기 좋아하는 아버지 때문에 산적과 전을 준비하지만 그 양이 많지는 않다. 추석이니 송편은 필수지만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 모시송편 좋아하는 엄마와 나를 위해 인터넷에서 주문한다. 일반 떡집에서 모시송편을 살 수도 있지만 가격이나 맛에서 인터넷이 더 나은 듯하다.
단촐하게 음식들을 준비하지만 어쨌든 엄마와 나, 단둘이서 하니 허리 고생이 자명하다. 벌초도 가야 한다. 내가 하는 거라고는 부모님이 낫으로 일일이 풀과 나무를 베고 나면 그것들을 한쪽으로 잘 치우는 것이다. 시골에서 어릴 때 낫질 좀 해본 부모님 솜씨에 미치지 못해 그런 것도 있고 본인들이 고생하는 것으로 끝나길 바라는 부모님의 배려가 크다. 고생은 내 대에서 끝내자는 부모님의 결심은 집안의 외아들이자 장남인 동생에게 안위를 주었다.
엄마는 장가 간 아들이 본인 가정 가장 역할만 열심히 한다며 핀잔을 주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 본인도 외아들로서 힘들게 그 책임을 다하느라 고생했고 그걸 아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으셨는지 동생 어릴 때부터 일을 시키지 않았다. 동생이 장가가고 아들도 낳으니 더 시키지 않는다. 동생 아들, 즉 손자가 고생할까봐. 이러니 내가 명절에 본가에 내려가 일을 해야 한다.
이렇게 추석에 일할 생각에 미리 병원에 가 치료를 받아뒀지만 역시나 허리병은 도졌다. 주말에 알바도 못갔다. 아픈데 참고서 일하는 것보다는 쉬는 것이 맞다고 본다. 어차피 욕은 먹으니. 아파서 참다보니 컨디션 안 좋으면 일의 집중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니 좋은 소리 못 듣는게 뻔하다. 아파서 결근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그럴바엔 차라리 쉬고 욕 듣는게 낫다는게 나의 결론이다.
알바 대신 이틀간 집에서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니 괜찮다 싶으나 더 나빠지기 전에 치료를 받기 위해 어제 병원에 갔으나 공사 중이라 당황했다. 처음에는 내가 아파서 제 정신이 아니라 다른 병원에 왔나 싶어서 간판을 여러 번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병원 입구에 너무나도 작게 10월 9일까지 휴진이라는 안내문. 왜 이리도 작게 구석진 곳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까지 걸어오며 허리가 덜 아픈 것 같아 갈까 말까 망설였기도 했고 하늘이 회색빛인게 비가 올 것 같아서 서둘렀다. 집에 들어오니 비가 쏟아진다. 서두르길 잘했다 하면서 거실에 매트 깔고 눕는다.
허리가 아프니 수영 생각이 난다. 수영은 진통제다. 현재도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지만, 서 있기 힘들 정도로 결국 고주파시술로 입원까지 하기 전 까지 거의 매일 수영을 했다. 왜나햐면 수영을 하고 나면 반나절은 허리가 덜 아팠기 때문애. 그때는 회사 바로 근처에 수영장이 있었고 새벽 자유수영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회사를 나온 이후 수영장 딱 한 번 갔다. 용인 이사가서 한 달간 놀 때. 시술 이후 허리가 덜 아픈 것도 있지만 상황이 자유수영을 허락하고 있지 않다. 주변에 평일 새벽 자유수영이 가능한 수영장도 없고 간절하지도 않다.
다음 달에 회사가 이전한다. 내가 살았던 동네와 가까운 곳으로. 주변에 수영장 몇 곳이 있고 자유수영하러 몇 번 가봤던 곳도 있다. 회사가 이전하면 다시 자유수영을 알아보리라 하면서도 생각만 하고 있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수영실력도 그렇고, 수영복도 낡아 새로 사야 하고, 하기 싫은 이유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바다 또는 호수 수영을 할 날이 왔으면 한다. 독일 사는 언니 가족이 여름이면 동네 수영장과 호수에서 수영과 피크닉을 즐기는 것이 참으로 부럽다. 코로나 전에는 이탈리아에 가서 한 달 넘게 살면서 수영과 하이킹을 즐기는게 부러웠고 나도 그렇게 살아봤으면 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이탈리아 또는 독일로 가 바다든, 호수든 뛰어들어 수영하고 자유롭게 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는 끝났다. 그러나 나의 바램은 여전히 바램일 뿐이다. 경제적 여유도 없고 한달간 해외갈 시간적 여유도 없다. 대출 완제후 빠듯하다. 그러니 해외 나갈 생각이 들겠는가. 일년도 안 된 이 일자리에 장기 휴가도 만무하니 그저 꿈 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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