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넘어가는 시대의 나에겐 학폭은 없었다. 학폭이라는 잔인성이 없었을까? 따돌리고 뺏고 때리고, 있었다. 그러나 잔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싫어서 같이 놀지 않을 뿐이었다. 싫으면 말지 왜 때리고 괴롭힐까?
과외로 돈 버는 것과 군대 가는 것 외엔 관심이 없던 대학 시절 제외하고, 학교 생활 동안 공부 외엔 관심이 없었다. 안 되는 머리와 학교 가기도 빠뜻한 형편에 공부 잘 하려고 악을 썼다. 그래서 친구는 없었다. 괴롭히는 애들도 없었다. 그러나 날 싫어하는 애들은 있었다. 좋은 성적 얻으려고 나서는 경향이 있었던 날 싫어하는 애들이 가끔 화장실에서 만나면 바닥에 침을 뱉으며 위협을 줬다. 등에서 땀이 났지만, 약한 모습 보이면 더 할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이 나도 바닥에 침을 뱉으며 어깨를 치며 나갔다.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생각하지 않고 우선 밀어붙였다. 등 뒤로 자기들끼리 뭐라고 했으나 따라오지는 않았다. 머리채를 잡고 싸울 각오가 무색하게 손은 땀으로 흥건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교실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몇 번 화장실에서 만났지만 이전처럼 침을 뱉으며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 속은 덜덜 떨리고 등에서는 땀이 흘러도 건들면 나도 가만있지 않는다는 각오. 여전히 유효하다. 학교든, 사회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 약한 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보이는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나처럼 무관심한 일반 사람들, 괴롭히며 성악설을 증명하는 나쁜 사람들도 있다.
학폭 피해자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부산 어느 저수지에서 죽음을 택했다. 슬프다. 그러나 자살을 택한 그 사람의 말처럼 편안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자살 여행을 한 적도 있고, 시도한 적도 있다. 나는 그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며 숨기려 했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의지와 욕심만큼 나의 죽음에 대한 생각도 그러하다. 한 번 시도를 해봐서 안다. 죽음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또한 남겨진 가족들에게도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그래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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