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이사를 갑니다. 잠실로의 출퇴근이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가장 싫어하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밥벌이 하느라 고생했습니다. 원래 밥벌이라는 것이 참으로 사람을 치사하고 한숨나게 하는데, 2호선 타는 40분이 구역질 나게 힘들었습니다. 2호선은 왜 그리도 잘 멈추고 인구 밀집도가 높은지. 어제도, 오늘도 앞에 가고 있던 지하철에서 환자 발생해서 멈추었습니다. 빡빡한 지하철 안에서 앉아 있어도 힘든데 멈춤 지하철에서 서 있기 참으로 힘듭니다.
이 힘든 2호선 출퇴근 생활도 이틀 남았습니다. 회사가 이전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잠실로 오기 전에도 다른 곳에서 이전했습니다. 사옥을 뺏기고 남의 집 살이 하더니 결국에는 또 쫓겨났습니다. 저는 이 회사 다닌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집과도 멀어서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득이 많습니다. 우선 2호선을 타지 않아도 되니 심리적으로 너무 홀가분하고요. 집에서 이전하는 곳으로 한 번에 가는 버스 노선이 여러 개입니다. 지하철 1호선도 가능하나 당분간 지하철은 타고 싶지 않습니다. 옆자리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차창밖 풍경 보며(한강을 멍 때리며 볼 수 있어요) 출퇴근 하고 싶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도 갈 수 있습니다. 2년 전, 밤일 했던 공덕동에서 집까지 한강 다리 건너서 걸어 다녔던 걷기 능력자입니다. 걷기와 산타기, 많이 먹고 많이 싸기로 하면 저도 드라마 무빙 속 능력자는 됩니다.
부담백배 짜증천배 2호선 출퇴근 생활, 이틀 남았습니다. 기쁩니다. 그런데 저와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의 분들도 있어 기쁜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입사 6개월차인 저는 회사 주변과는 먼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래 전 입사해 일하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잠실을 기준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송파구, 강동구, 강남구, 하남. 제가 모든 직원들의 거주지를 조사한 것은 아니나 같은 팀원들이 그렇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간혹 회사 이전 이야기를 하며 거주지와 멀어져 가기 싫다는 대화도 종종 들었습니다. 독거중년인 저와는 먼, 결혼과 출산으로 아이까지 있다면 집을 옮길 수도 없으니 고난의 행군과 같은 출퇴근이 시작되는 셈이죠.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고, 한강을 볼 수 있고, 걷기 능력자로서의 재능을 실천할 수 있는 곳으로 회사의 이전. 짐을 싸며 한숨 쉬며 힘들어 하는 팀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입사 6개월차고 하는 일이 약소해 짐이 없어요) 속으로 웃고 있습니다. 매일 신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하는 회사로 출근할 생각하면 웃음이 납니다. 혼자서라도 마음껏 웃고 싶어 휴식 시간 30분동안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안 볼 곳이라 생각하니 걷고 싶습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곳이면 내일이 있기에 잘 걷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앞두거나 떠날 일이 생기면 걷게 됩니다. 그래야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30분, 제게 주어진 휴식 시간. 하루 만보 걷기에 많이 기여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낡은 아파트가 아닌 새 아파트 쪽으로 걸었습니다. 왜냐하면 낡은 아파트는 장미라는 아파트명이 무색하게 주변에 은행나무가 너무 많아 고약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제가 걷을 때면 정화조 청소차까지 와 있어 머리가 띵할 정도입니다. 사실 오늘도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낡은 아파트 방향으로 갔는데 정화조 청소차가 있어 급히 방향을 바꾸었고 건너편 새 아파트 단지가 보여 도망가듯이 그리로 들어갔습니다.
아파트 이름도 모른 채 들어갔고 새 아파트답게 깨끗했습니다. 차와 오토바이가 다니는 것을 보며 최신축은 아닌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야말로 새삥, 최신축 아파트는 보통 지상으로 차와 오토바이가 다니지 않고 저와 같은 외부인이 단지 내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들어 놓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최신축 아파트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겪어보니 그렇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얼마전까지 주말에 일했던 백화점 뒤로 롯데캐슬클라시아라는 아파트가 있습니다. 네이버부동산 정보를 확인해보니 22년 1월에 사용승인이 났습니다. 입주는 정확히 언제했는지 확인하지 않았지만 사용승인 후 입주했을테니 지은지 2년이 채 안 되었습니다.
토요일 어느 날, 출근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다가 새것의 위용을 자랑하는 아파트가 보였고 그것이 롯데캐슬클라시아였습니다. 단지가 어떤지 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파트 주변만 둘러보다가 끝났습니다. 완전 요새였습니다. 차와 오토바이도 모두 지하로 다녔고 차단기를 통해 입출을 관리했습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모두 보안기계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 주변으로는 나무숲이 아주 촘촘히 둘러쌓여 있어 저층이어도 노출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이름답게, 캐슬을 지켜내기 위한 요새화가 되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4년 전, 용인의 최신축 아파트에 살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아파트도 차와 오토바이는 차단기를 통해 입출이 관리되었으나 외부인에 대한 통제는 없었습니다. 아파트 거주민으로서는 그 부분이 싫었습니다. 아파트 뒤로 산과 호수가 있었고 단지를 통해 가는 것이 지름길이다 보니 외부인이 꽤 왔다갔다 했습니다. 별거 아닐 수 있으나 저처럼 내것에 대한 욕심이 많고처음으로 새 아파트 살아 기대하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피해본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아파트 정문과 후문에 보안장치가 있어 입주민만 단지 내로 입출하기를 바랬지만 비용적인 문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아파트를 팔고 다시 서울로 오면서, 입출구에 보안장치가 없는 곳에 살면서, 그리고 여러 아파트를 둘러 보며 저는 요새 새화된 곳이 없음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런데 롯데캐슬클라시아를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주변만 둘러봤지만 요새화된 아파트임을 확인한 후 호감 지수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이 아파트가 있는 동네는 선호하지 않아 살고 싶다, 사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렇게 요새화된 아파트가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 있다면 살고 싶고 사고 싶겠구나. 그런데 돈이 문제죠. 부동산담보대출 완제후 월급에 의지하는 상황에서 상상만 했습니다. 주식이 10배 넘게 오르고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오르고... 로또 1등이 되고...
외부인이 단지내로 들어갈 수 있는 새 아파트 구경을 하며 다시 일터로 걸음을 옮깁니다. 요새화되지 않은 아파트라 살고 싶지는 않네(살고 싶어도 못 사는 주제에), 잠실나루역과 붙어 있네, 차와 오토바이가 지상으로 다녀서 위험하네 ... 혼자만의 아파트 평가를 하며 걷다보니 일터입니다.
자리에 앉아 검색합니다. 얼마일까? 그 아파트는 얼마일까? 잠실파크리오로 검색해봅니다. 2008년 8월 사용승인, 지은 지 10년 이상이지만 서울에서는 이정도면 신축이라고 봅니다. 낡디 낡은 아파트 옆에 있어 체감적으로 더 새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네이버부동산에 올라온 전용면적 25평대 매물이 20억 원 이상입니다. 최근 10월에 매매 거래된 가격이 21억 7천만원, 대단합니다. 현금 2억만 있어도 저는 숨통이 트이고 매일 알바몬 안 들여다 볼 것 같은데 20억 원 이상하는 아파트에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습니다. 잠시 그곳에 사는 이들이 부러웠지만 살고 싶지 않아 하며 위로했습니다. 회사도 이사하고 나와는 맞지 않는 동네야 하면서 네이버부동산 창을 내리고 알바몬 창으로 올렸습니다. 로또 1등 되도(금액에 따라 다르겠지만) 못 살 아파트, 내가 살고 싶지 않은 동네, 회사가 이전해서 더 별로야 하면서 한푼이라도 벌자 하면서 다시 알바몬 구인 공고를 들여다봅니다. 새벽 의류 하차작업,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원했는데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다행입니다.
지난주에 3일간 바보같은 짓을 해 나의 필요 가치에 대해 스스로 회의가 드는 이 시국에는 일하고 돈버는 게 답입니다. 주말 알바 짤리고 돈 나올 곳이 평일 일밖에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는지, 날밤 세는 일 다시는 하지 말자고 해놓고 덜컥 심야 일에 지원했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와 면접 보고 합격한 분이 하루 교육 받고 무단으로 나오지 않아 제게 연락이 급히 왔습니다. 저는 2순위자라며 애매한 답변을 준 곳이었습니다. 밤 9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홈쇼핑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링 및 사내 임직원 전화받기가 업무입니다. 다시 날밤 세는 일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집과도 가까워서 덜컥 하겠다고 했습니다. 걸어서 20분 거리의 회사이고 200만 원 이상의 고정 수입이 생기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육 3일 받아보니 할 수는 있는데, 혼자서 근무해 휴게 시간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없는 휴게 시간을 계약서에는 기재하고 급여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 교육을 맡은, 퇴사하실 분이 말씀해주셨고 그 이후 쓰나미급 혼란.
이틀간 부모님 이사 문제로 교육을 보류했고 3일간 밤 늦게까지 교육받은 여파인지 이사 도우며 저의 체력적 한계를 느꼈습니다. 밤일 하며 몸살과 두통을 거의 매일 앓았던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돈보다는 제 자신을 택했습니다. 제가 잘못된 선택을 했으니 3일간의 교육비는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깝게 느껴지기 보다는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 시간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위로했습니다. 그래도 3일간, 교육이라 한 일은 없지만 매일 7시간씩 밤 늦게까지 눈 뜨고 있었고 그 시간과 기회비용을 날린 것으로 자책합니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찾습니다. 이게 저의 장점입니다. 바보 같아도 다시, 어떻게든 다른 방안을 찾는 것. 손 놓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
2시간 일하고 4만 원. 시급으로 치면 2만 원. 이것으로 20억 원 하는 아파트 못 삽니다.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달라집니다.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그 과정에서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애정을 갖습니다. 일을 끝내고 받는 돈으로 아파트는 못 사지만, 내가 생활하는데 혹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쓰여지니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드라미틱한 삶의 변화보다,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하루를 버티고 앞으로도 제 스스로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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