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같은 존재, 파견직이자 반일제 근무자인 나는 회사에서 그런 존재다. 육지와 닿아 있으나 결코 육지인들과 같은 입장이 될 수 없는.
회사가 이전했고 첫날이다. 10시부터 근무이지만 첫날이니 9시 10분에 도착했다. 여전히 길가에 자리잡은 내 자리. 이번에도 남자 화장실 앞, 길가 자리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출입구가 너무 잘 보인다는 것. 사무실은 이전보다 크고, 그만큼 여러 부서가 한군데로 몰려 있다.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다. 반면에 오랜 시간 일한 직원들의 반가움과 잡담은 크다.
얼마 되지도 않은 짐을 풀고 인터넷 연결이 안 된 것을 확인하고 담당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답을 듣고 시간을 확인해보니 40분이나 남았다. 근무 시작 시각으로부터. 마치 동창회를 생각나게 하는 이들로부터 피하고 싶었다. 본능적으로 휴게실이 있을만한 위치를 찾아 걸어갔다. 커피머신기의 원두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전에는 맛 없는 라떼에 실망했지만, 이제는 적응도 됐고 일주일 전 커피머신기가 먼저 이전하는 회사로 가 있는 동안 참으로 그리웠다.
얼마전 스타벅스의 거품 가득 라떼에 실망했던 기억과 라떼를 마시지 못한 지 열흘 정도 되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유난히 맛있고 부드럽다. 반가워할 이도, 반겨줄 이도 없는 곳에서 유일한 익숙한 존재라서 그럴까?
남산이 창밖으로 보인다. 청파동과 아현동, 행촌동에서 살았던 그때의 익숙한 풍경들이 반갑다. 이전보다 휴게실도 커졌고 숨어 있을 수 있는 자리까지 있다. 라떼를 텀블러에 채우고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풍경들을 보며 라디오를 들었다. 휴게실에서도 반창회 갖는 이들이 모여 친밀감을 극대화하고 있어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익숙했던, 때로는 그리웠던 풍경들를 마주하며 라떼를 마시니 진정된다. 섬 같은 내가 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육지로 가고 싶지 않다. 낯설고 외로운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다. 한참 풍경들을 보며 그 풍경들 속에 있었던 때를 떠올렸다. 남산을 날다람쥐처럼 오르락 내리락 했던 체력 좋았던 나부터 돈 벌려고 남대문시장에서 날밤 세던 나까지,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나보다 잘 난 이들 속에 섬처럼 살고 있는 내가 과거의 나를 생각하는 것은 그때가 그립기 때문이다.
다시 적응해야 할 사람들, 혹은 무시해야 할 사람들 속에서 버틸 시간들만 남았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지만 기운 빠진다. 회사 근처 맛집을 찾아 삼삼오오, 혹은 팀 전체가 움직인다. 회사 주변의 모든 것을 다 겪어 보진 않았지만, 내 놀이터 같았던 곳에서 뭔가를 새롭게 시도할 생각은 없다.
회사 주변으로 나만의 지도가 있다. 그 지도 안에서 움직이고 싶다. 철저히 혼자가 될 것 같다. 월급과 4대보험이라는 보증금을 갖고 있는 집주인을 따라 온 세입자의 마음은 언제까지 계속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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