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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두발로, 급할 것 없는 출근길

by 델몬트고모 202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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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부터 업무 시작. 자율 출퇴근제를 시행하는 회사지만 나는 예외. 난 섬 같은 존재, 파견직 반일제 근무자니깐. 10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중간에 30분 휴게. 근무시간을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은 아니나 나 스스로 철저히 지킨다. 나중에 뭔가 문제가 되었을 때 근태가 정확하지 않으면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섬 같은 존재로서 자율적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을 지켜본 결과, 출근과 퇴근 시각이 자유로울 뿐 아니라 점심 시간 1시간을 지키는 이들은 드문 것 같다. 주 40시간 근무시간을 채우면 별로 문제 삼지 않는 시스템인 것 같다. 내 옆자리도 앞자리도 1시간 30분, 점심 시간을 보낸다. 

 

반면에 나는 12시부터 12시 30분이 휴게 및 점심 시간이다. 어디가서 쉬기도 밥 먹기도 애매하다. 집에서 편하게 먹고 싶기도 하지만 회사의 간식과 라떼 몇 잔 마시고 나면 딱히 배고프지도 않다. 

 

머리 쓸 일도, 몸 쓸 일도 없는 일. 조용히 있다 간다. 이슈가 발생하면 이에 대한 답변 준비를 하기도 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런 자리도 아니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회사가 내게 준 시간들을 채울 뿐이다. 

 

2주 전 회사는 이전했고 나의 거주지와 많이 가까워졌다. 시간적으로는 많이 여유로워졌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회사에 간다. 일찍 가서 뭘 하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급할 것 없는 출근길, 날도 따뜻하다. 그래서 걸었다. 서울로를 두발로 걸었다. 뜻하지 않은 아침 산책. 

 

지난 주 금요일, 오전 8시의 알바 면접을 보고 마곡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대문역에 내려 아슬아슬하게 10시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노트북 콘센트가 없어졌다. 어이없고 황당한 일. 결국 노트북 전원은 소멸되었고 도움을 요청했던 나는 결국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콘센트 하나를 대여 받고 퇴근했다. 

 

콘센트가 없어진 것보다 이 상황을 나만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이 일의 여파로 철저히 나는 섬이 될 것 같다. 부유하는 섬. 그게 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