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관리비 3만 원만 내면 됐던 장교숙소. 더운건 참을 수 있어서 선풍기 없이 지냈지만, 추운건 참을 수 없어 보일러를 하루종일 켜두고 살았다. 일제 시대때 지어진, 귓가에 바람소리가 들리는, 야외 취침 모드와 비슷한 건물에서 추위를 견디며 일하다 돌아온 숙소는 날 반겨주었다. 따뜻한 정도가 아닌 더운 기운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고 돌아온 날 맞아주는 순간만이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달 3만 원이면 되니 정말 걱정없이 보일러를 켰다. 아니 끄지를 않았다. 그러나 쓴만큼 내야 하는, 전역후 독립생활은 그럴 수가 없었다.
16에서 18도. 겨울철 보일러 온도다. 지역난방 아파트와 현재 살고 있는 남향의 통창 아파트. 다행히도 외풍 없고 아침과 낮에 들어온 햇빛으로 집안 온도가 올라가 보일러 난방을 켜두지 않아도 괜찮았다. 밤에는 전기장판 켜두고 자면 됐다. 깨면 실내공기가 약간 찼지만 괜찮았다. 그러니 겨울에도 보일러 켜질 날이 많지 않았다. 바닥과 실내공기가 찼지만 추워서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겨울철 도시가스요금이 5 ~ 7만 원. 실면적 18평 아파트에서 이 정도면 적게 나온다고 생각해 아끼는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영하 15도의 한파가 오자 보일러를 껴야만 했다. 집이 추운건 아니었지만 동파로 발생할 막대한 비용과 피해는 결코 만나고 싶지 않았다. 1월에 조카 생일을 맞아 오실 부모님 생각에 집을 평소보다는 따뜻하게 만들어둬야 했다.
설정온도를 13도에서 18도로 올렸다. 보일러 난방이 켜졌다. 온수 외엔 켜지지 않던 보일러가 켜졌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실내 온도 17도가 올라가질 않는다. 이상하다. 결국 보일러 난방을 켜두었음에도 오히려 실내 온도가 16도로 떨어지는 걸 보고 AS를 불렀다.
한파임에도 다음날 기사가 왔다. 보일러 문제가 아닌 배관 누수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기사가 오기전 관리실 직원들이 와서 그 부분을 미리 확인했고 누수는 없다고 하니 그럼 보일러 펌프 기능이 떨어져서 난방수 순환이 안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보일러 문제가 아니라며 난방수가 돌 수 있도록 배관을 보라고 한다. 이미 관리실 직원들이 배관이나 누수 문제가 아니라고 확인했건만 기사는 보일러 문제가 아니라며 못 고치는 걸 회피한다.
출장비 주고 기사를 보내려다가 2011년도 보일러 제조일자를 보니 새것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것 설치비용을 기사에게 물어보니 반색하며 95만 원이라고 한다. 어느정도 생각한 비용이다. 작년에 1등급으로 보일러 교체하려다 지원금 10만 원 소진되어 나중에 해야지 하며 말았는데 이번에도 지원금은 소진이다.
10년 이상된 제품은 새것 교체가 답이다. 특히 전기나 가스 용품은 그렇다. 못 고치는 상황이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기사가 현금 영수증 필요없으면 8만 원 깍아준다고 한다. 출장비도 안 받고 가스 안전 진단기도 무료로 달아준다고 한다. 드디어 이렇게 1등급으로 보일러를 새것으로 바꿨다.
아깝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보일러. 10년 이상 기능을 다 했고 1등급이라 에너지 절약도 되니 사는게 맞다. 지난달 야간에 포장알바로 번 돈이 다 나갔다. 보일러 사는데. 뿌듯하다. 한파에도 더워서 자다 깨니, 금방 따뜻해지는 물과 맨발로 느껴지는 바닥의 뜨끈함. 행복하다.
아끼면 똥 된다. 진리다. 다음달 가스비가 분명 이전보다 많이 나오겠지만 아끼다가 마음 고생, 몸고생 하다 결국 돈 나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돈을 벌어야 하나니. 오늘도 알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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