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가 되기 2분전 글을 쓴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여행 또는 출장 가는 이들로 붐비는 서울역. 10시부터 업무가 시작되는 4대 보험 가입 직장은 아직이기에 역사 안 구석진 자리에 앉아 한숨 고른다.
나의 만보기이자 슬기로운생산과 소비생활 담당 어플 토스와 슈퍼워크는 이미 만보를 채웠다.
지난주부터는 만보 채우는 것이 너무 쉽다.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포장 알바를 하기 위해 집과 일터를 오가며 2시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장갑, 가방, 목도리 등 패션잡화를 파는 회사. 주문 송장을 보고 물건을 찾다 보면 만오천보는 넘어있다. 물건이 가볍고 작아 힘 쓸 일은 없지만 100평 사무실 이곳저곳, 구석구석, 대형 박스와 마대자루를 찾다보면 발바닥이 아리다.
허리와 목 디스크가 있지만 할만하다. 20대의 민첩함과 30대의 빠른 판단력은 기대할 수 없지만 이곳에서 내가 잘하는 것을 발견해 괜찮다. 포장능력자. 2 ~ 3명과 하는 것보다 나 혼자 포장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직원의 칭찬. 일하면서 칭찬받는 것, 오랜만이다.
사람들도 괜찮다. 품목은 다이소급이지만 사장과 사장의 형, 사장의 아는 동생이 다인 작은 회사다. 텃세 부리는 고인 물 같은 직원이나 알바생은 없다. 아무래도 새벽까지 일해야 하고 몸을 쓰는 일이다 보니 하루 일하고 다음날 오지 않거나 하다가 가버리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어제, 아니 오늘도 그랬다.
새벽 2시부터 8시까지 일하기로 한 알바생 2명은 모두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4시까지 연장근무를 했다. 주말 이틀 집에서 먹고 자기만 해서인지 컨디션이 좋았고 잡념이 많은 때는 몸 움직여 일하는게 낫다.
4시까지 일은 마치고 집까지 걸어오니 5시. 씻고 자면 좋으련만. 손만 씻고 햄버거를 먹었다. 일하는 곳에서 식사이자 간식으로 준 편의점 햄버거와 커피음료. 고맙다. 어디든 먹는 거 챙겨주는 곳은 눈물나게 고맙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농땡이 안 부리고 성실히 일한다.
집에서 일하는 곳까지 1시간 걸어가면 배고프다. 일하다보면 더 배고프다. 그러나 식사를 하거나 뭔가를 자리 잡고 먹게 되면 식곤증이 심하게 와 일 마칠 때까지는 커피로 버틴다. 커피로 안 되면 초코과자를 먹는다.
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긴장 풀리면 안도감인지 배고픔인지 모를 것에 홀려 먹고 잔다. 샤워할 기운 없다면서 먹을 기운은 있다.
맛있다. 한입만 먹고 자야지 했는데 결국 햄버거 하나 다 해치웠다. 5시 30분에 눈 감았고 7시 20분에 눈 떴다. 15분간 다리 마사지 하며 전기장판의 따뜻함을 만끽했다.
밤일은 못 할 것이다, 안 할 것이다 했는데 다시 하고 있다. 사람 상대하지 않고, 친절 강요하지 않고 내 몸 열심히 써 가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라서 내가 기꺼이 감당하고 있다. 이제야 적성을 찾은 것 같다.
몸은 약간 고달프지만 심적 동요나 스트레스 없는 이 일이 괜찮다. 40분 쉬고, 먹을 것 챙겨주고 일당 8만 원 주는 이 일 계속했으면 한다. 더 나은 일이 있으면 좋겠지만 산 좋고 물 좋은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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