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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abucks 알바벅스, 시급인생 알바경험 공유

3번의 면접과 1번의 합격, 드디어 주말 알바를 찾다.

by 델몬트고모 202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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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미성년자일 때 이 영화를 봤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이 극장을 보내주거나 함께 가줄 여유가 없었지만 TV가 절 영화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이야 K 컨텐츠라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영화와 드라마, 음악이 세계적이지만 80년대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국 드라마와 영화가 주말 황금 시간대를 차지 했습니다. 오래 전, 이라크에서 건설사 직원으로 돈 벌고 있을 때 현지인들이 저를 보면 '장금이' 또는 '허준'을 말하며 눈빛을 빛냈습니다. 알고 보니 '허준', '대장금', '주몽' 등 한국 드라마가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 국가에 방영되어 국민적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곳에 있는 동안 아랍어로 더빙된 장금이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현지인들이 한국 드라마 방영 시간을 기다리듯이 저 또한 어린 시절 그랬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미국 가족 드라마 ' 초원의 빛'을 기다렸고,  토요일 오전 수업이 마치고 나면(네, 저는 토요일까지 학교 다닌 세대입니다.) '레밍턴 스틸'을 보기 위해 미친듯이 집으로 뛰어 갔습니다. 지금도 '피어스 브로스넌'은 저를 설레이게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트윈픽스'와 '엑스파일'을 보기 위해 숨죽였습니다. 내용이 과소 기괴하고 흔히 말하는 '야한' 장면이 있기에 대놓고 볼 용기는 없었습니다. 거의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TV 볼륨을 줄이고 몰래 봤습니다. 다행히도 부모님은 그런 것으로 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제가 우등생이었습니다. 1번이지만 전교 1등도 했고 전교 10등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가서 100위 밖으로 밀려났지만, 공부와 성적 때문에 부모님 걱정을 사지 않았기에 제재가 없었습니다. 그냥 '넌 왜 코쟁이만 보냐? 한국 사람이 왜 한국 영화 안 보고 외국 영화만 보냐?' 하며 넘어가셨습니다. 
 
미국 드라마로 시작된 저의 타국 것에 대한 관심과 동경은 영화로 이어졌고 '주말의 영화'  보기가 취미가 되었습니다. 동네 비디오 가게의 VIP 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니 당연히 영화배우가 최애였습니다.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도 좋았지만, 앞서 말한 '레밍턴 스틸'의 피어스 브로스넌을 더 좋아했고 영화 속에서 다른 인물로 빙의하는 배우들을 좋아했습니다. 더스틴 호프만, 덴젤 워싱턴. 헐리우드 배우도 좋아했지만 주윤발과 장국영, 홍콩 배우들도 참 좋아했습니다. 영화 속 캐릭터가 강하거나 남성미 또는 여성미가 짙은 배우들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본 주말의 영화를 보고 전혀 다른 매력의 배우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휴 그랜트와 앤디 맥도웰. 그 시작은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사실 영화 자체는 제게 지루했습니다. 결혼과 장례식이 어린 제게는 생소했고, 제가 좋아하는 '야한 장면' 도 없고, 가장 이해 안 되고 짜증나는 것은 남녀 주인공의 우유부단함. 어쨌든 영화 제목처럼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끝에 둘은 결혼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영화는 참으로 지루했지만 주인공을 맡은 휴 그랜트와 앤디 맥도웰의 매력은 전혀 지루하지 않아 지금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미성년일 때는 짜증났던 그 영화가 보면 볼 수록, 나이 들수록 마음에 와 닿아 보고 또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세상 살이를 겪어 가고 있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반했고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고 뭔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함의 결정체였던 그들이 이제는 곧 제가 되었으니까요.
 
어떤 것도 쉽게 결정할 수도, 결정되지도 않는 상황. 내 뜻과 의지가 있어도 상대방이 거부하는 상황들. 하나의 일만으로도 경제적인 부분이 만족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 그래서 쉼없이 알바를 찾고, 면접을 보고. 저는 연말에 알바, 특히 주말의 고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세번의 면접을 보며 바쁘게 보냈습니다. 월수금에는 출근 전 치과 청소 알바를 하고 월화수목에는 퇴근 후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의류잡화 포장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루 2시간에서 3시간 자고 면접을 본다는 것, 지칩니다. 절대적으로 잠이 부족한 상황이고 몸 쓰는 일을 하니 체력적으로도 힘듭니다. 그래서 과식을 했습니다. 과자로 식사하는 과식. 잠을 줄여가며 힘들게 돈을 버니 돈 쓰고 싶지 않기도 했고, 내돈 쓰지 않아도 되는 과자가 회사와 알바 일터에서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과자를 좋아합니다. 칼로리만 높지 않다면 계속 먹고 싶습니다. 건강에 안 좋다고 하는데 전 정신건강과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해 과자를 멀리 할  수 없습니다.
 
과자의 힘으로 하루를 버티며 '세 번의 면접', 그 중 1차 부서 담당자와 2차 인사 담당자까지 이틀에 걸쳐 본 면접에 진이 빠졌습니다. 합격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불합격해  멘탈이 나가려고 하는 거 간신히 잡았습니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하는 일이라 사실 합격해도 걱정이었던 일자리. 그래서 다행이다, 밤일 하지 말라는 하늘의 뜻인가 보다 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다가도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2번에 걸쳐 1시간동안 그토록 많은 질문들을 했단 말인가? 생수 한 병 주면서, 면접 시간들을 시급으로 쳐서 돈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진짜 궁금합니다. 왜 고용주와 면접관들은 구직자의 시간들과 노력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무급으로 생각하는지. 면접 끝에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말은 왜 하는지. 부정적 생가들이 꼬리를 물수록 현실만 더럽게 느껴질 뿐이니 멈추고 일하러 갔습니다. 마켓컬리 심야 피킹 알바. 마켓~헬입니다. 역대 최악이었던 마켓컬리. 상온 파트인데 왜 냉장과 냉동으로 사람을 이리저리 갔다 놓고 부리는지. 저는 앞으로 마켓컬리도 이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사람을 택배 박스보다 못한 취급하는 회사에 제 돈을 줄 생각이 없습니다. 냉동 파트에서 추위와 돌덩어리 같은 냉동 제품들과 사투 끝에, 일이 끝났음에도 연장 근무 거부했다는 이유로 추위 속에서 1시간동안 퇴근 셔틀 버스 기다리게 하는 저질의 극치. 절대적으로, 마켓컬리에 내 돈 쓰지 않는다고. 
 
같이 일하면 좋겠다, 급여를 비롯한 근무조건 관련 상세한 내용과 함께 합격 여부 알려주겠다던 2번의 면접. 그리고 다른 지원자들 면접이 있고 그 이후 합격 여부 알려주겠다던 1번의 면접. 그 3번의 면접 끝에 어제 드디어 주말 고정적인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 면접이 있고 그 어떤 긍정적인 신호도 보내지 않았던 곳에서 합격 연락을 받았습니다. 신축 주상복합 아파트의 입주민센터 컨시어지 자리였고 경력이 없어 제 스스로 위축되어 면접을 봤던 곳입니다.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원한 것은 우선 시급이 높다는 것과 걸어서 다닐만큼 가까운 거리, 그리고 신축 아파트이니 근무환경이 쾌적했기 때문입니다. 경력이 없음에도 헬스장과 골프장 안내 데스크가 유사성이 있다며 제가 가진 가능성, 그리고 성실함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면접관 반응이 그닥 호의적이지는 않아 기다리는 동안 기대를 내려 놓았습니다. 시급을 비롯한 근무조건이 좋았고 부동산 관리 전문 회사에서 일하며  커리어업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설레였던 일자리, 그러나 제가 가진 장점보다는 단점이 크게 생각되어 마음을 접고 다시 주말 알바를 알아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좋은 기회가 되고 경제적인 부문에 큰 도움이 될 만한 일자리였으나 면접을 보고 저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기에 감사의 마음이 큽니다. 이전에 해왔던, 내가 가진 능력으로 돈을 벌고 그 돈이 내 능력과 노력에 비해 적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고마움이 듭니다. 이 마음 언제까지 가질까 제 자신을 의심하지만, 간절함과 부족함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꾸준히 일을 찾지만, 꾸준히 일에 대한 간절함과 노력들을 잊는 제가 이번에는 다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