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후 시작된 서울 생활, 2번의 전세살이와 동생집 곁살이 끝에 독립문역 근처에 다세대 한 층을 7900만 원에 샀습니다.
그때는 대출 받으면, 빚 지면 인생 나락 가는 줄 알았던 순진한 처자였던지라 100% 제 돈으로 장만한 집이었습니다. 이라크 6개월 다녀와서 4000만 원이 생겼고, 명동에 중국인들이 화장품 사려고 줄 선거 보고 한국콜마를 비롯한 관련주 단타로 5000만 원까지 불렸던, 제가 주식 천재라 착각한 때였습니다.
지금은 2차전지 광풍 속에서도 급등하지 못한 씨**스로 매일 자기비판에 빠져 있습니다. 반토막 났지만 10년 후에는 절 부자고모로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반기보고서 읽고나니 망하지는 않을 것 같고 미래를 위해 공장 열심히 짓고 해외 수주로 영업 이익도 나고 있으니...믿고 버틸 수 밖에 없습니다. 하루하루 일하고 돈 벌며 버티면 저도 티파니에서 셀프로 링 장만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때 그렇게 주식 단타로 집 수리비용 890만 원도 3개월만에 벌었습니다. 전용면적 13평, 방 2개와 화장실겸 욕실 1개 그리고 주방겸 거실. 작았지만 동생과 살기 좋았어요. 무엇보다 종로라는 역사와 문화가 있는 동네에 살아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독립문역과 서대문역, 더블 역세권에 집앞에는 안산이, 집뒤로는 인왕산이 버티고 있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습니다. 걸어서 서촌과 광화문, 경복궁과 현대미술관 등 자연 속에서 역사와 문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어 참으로 좋은 동네였습니다.
당시에는 아파트 로망이 없어 다세대 주택, 작은 집에 사는 것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맨 꼭대기 층이라 계단 오르는 것이 만만치 않았지만 온실과 옥상이 있어 한겨울에도 햇빛 완충으로 반나절이면 뽀송뽀송한 빨래를 만지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허리 디스크가 생기며 119의 도움 받으며 힘겹게 응급실에 실려간 후, 아파트 욕심과 새 집 열망으로 용인에 아파트 분양받아 종로를 떠났죠. 그 집은 그립지 않은데 그 동네는 그리워요. 경희궁자이나 롯데캐슬이 그래서 가장 살고 싶은 집입니다.
처음 살아 본 아파트, 그것도 새 아파트. 비가 와도 우산이 필요없고(지하부터 엘리베이터 연결되니까요) 13평 살다가 30평대 가서 사니 궁궐이었습니다. 제게는.
그러나 직장이 있는 서울과 용인 오가기, 주담대 원리금 부담으로 1년 살다가 팔았죠. 1억 6천 차익 있었지만 그 이후 부동산 폭등이 오며 현재까지도 자다 벌떡 일어나 제 머리통을 후려칩니다. 이야기하는 것조차 괴로워서 여기까지만.
용인 아파트 팔고 용산에서 잠시 전세로 있다가 현재까지 살고 있는 영등포. 오로지 조카 자주 보고 싶어서 산 집입니다. 아파트는 폭등해서 못 사고 주택이나 빌라는 이미 한 차례 사 보고 살아봐 단점이 많다는 걸 알기에 오피스텔을 샀습니다. 방 2개와 통창, 주거용이라 아파트와 비슷한 편리함, 감당할 수 있는 가격, 무엇보다 조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이라 고민 않고 샀습니다.
편리한 것은 맞으나 조카는 자주 못 보고 산도 없고 아파트에 쇼핑몰만 있어 제 성향과는 맞지 않아 거의 집에만 있습니다.
그런데 3년 이상 살다보니 동네 장점이 보입니다. 쇼핑은 자주 하지 않지만 슬리퍼 신고 백화점 마트 갈 수 있으니 편합니다. 어디서 살까 고민은 안하죠. 돈이 없어 문제죠.
걸어서 15분 거리에 기차역이 있어 대전 본가를 새벽에 기차 타고 가고 밤늦게 돌아와도 됩니다. 지하철과 버스 도 쉽게 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알게 된, 살 것도 없는데(사고 싶은 것은 많은데 돈이 없어서) 백화점과 몰 배회하는 것이 싫어 찾게 된 도서관. 동네 곳곳에 도서관이 있습니다. 영등포도서관, 문래도서관, 샛강도서관 등.
이번에 알게 된 당산동생각공장 도서관.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이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우선 비치된 책이 어린이 도서가 많고 책상이 별로 없어요. 흔히 생각하는 자습실이나 컴퓨터실이 없습니다.
독일에서 조카가 오면 어떨까 싶어 가봤는데 아이들에게 좋다는 느낌이 팍 옵니다. 자유롭게 책을 고르고 읽을 수 있는 공간 설계가 참 좋았습니다. 가족 단위로 오다보니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를 둔 게 가장 좋았습니다. 저처럼 혼자 온 사람에게도 안락한 공간이었습니다.
시원하고 공짜인 에어컨 바람 쐬며 책을 1권은 독파하리라 했으나 배고파서 대여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읽고 있습니다. 2주가 다 되어가는데.
오후 알바, 주말 알바 모두 끝난 상황. 일 하나만 하니 시간이 참으로 많습니다. 잉여롭지만 뭘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부족한 것이 많다는 건 공부해야 한다는 신호죠. 알지만 모른 척하고 있습니다. 3일후면 독일 조카와 옆동네 조카 모두 만납니다. 그때까지는 오전에는 일하고, 간간이 알바하며 도서관 가서 슬기롭게, 0원의 잉여생활을 보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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