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lbabucks 알바벅스, 시급인생 알바경험 공유

주말에는 가구를 팔아요, 노부부의 생애 첫 식탁

by 델몬트고모 2023. 10. 23.
728x90

언젠가 주말 일을 구하기 위한 면접에서 인사담당자가 이렇게 물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전 취미가 알바입니다. 현재로서는 돈 버는 거 외에는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돈을 벌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줄곧 주말에도 일을 해왔습니다."

 

다시 인사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취미가 알바라니? 열심히 사는 것은 좋은데 조금 슬프네요"

 

'슬프다? 뭐가 슬프다는 거지' 그때 그렇게 생각했다. 취미가 알바라는 날 슬프게, 아니 불쌍하게 봤던 인사담당자를 날 합격시켰으나 결국 난 주말 4일, 즉 2주 지나 관뒀다. 케이블 방송에 나오는, 인지도 없는, 다양한 제품들을 전화로 접수하는 일은 생각보다 덜 체계적이고(홈쇼핑 전화 상담원 경험이 있어 비교하자면, 주소를 포함해 고객 정보가 전산 자동화되어 있고 일원화되어 있었던 홈쇼핑에 비해 케이블 방송은 전국 팔도의 불특정, 특히 연로하신 분이 부정확한 발음으로 사투리를 구사하며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전산도 복잡하고 방송별, 상품별 담당자에게 다시 전달하는 등 복잡하다) 무엇보다 주소지 오배송에 대해 상담원이 일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앞서 말했듯이 전국 팔도의 불특정 사투리 구사 연로자분들이 전화를 주셔서 알아듣기 어려운 상황) 관뒀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취미가 알바인 나의 불쌍함은 주말과 평일 야간 알바를 줄줄이 잃고 나서 알게 되었다. 둘다 경영 악화로 인한 짤림. 당분간 쉬다가 상황 좋아진다면 다시 부르겠다고 미화했지만 다시 부를리도 없고 나도 갈 생각은 없다. 두 곳 모두 집에서 걸어 20분 거리라 가깝고, 비교적 쉬운 일이라 오래 하길 바랬지만 바램대로 되지 않았다.

 

돈 벌 곳이 세 곳에서 한 곳으로 줄어들어 아쉬웠지만, 이 시기에 독일에서 언니와 조카가 와 여기저기 함께 다니랴, 고팠던 잠을 자느라 한가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언니와 조카가 독일로 돌아간 후, 많아진 시간과 비례한 카드값과 반비례한 통장 잔고였다. 슬슬 돈 생각에 목이 메이고 가끔은 머리가 멍해졌다. 뭐라도 되고 싶어 공부하며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했다가도, 이제 와서 뭐라도 되면 뭐하리 하며 또 멍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다시 알바 찾기. 평일은 몇 번의 면접을 봤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과 병행하기 어려움, 이제는 하루에 한 가지 일만 해도 극도로 피곤해지는 몸과 마음으로 주말로 좁혀 일을 찾았다. 

 

이전에 하던 전화 관련 일은 하기 싫고 열악한 근무환경도 싫어 백화점 가구 판매 일을 구했다. 집 주변으로 백화점이 3개나 있지만 괜히 같은 동네 사는 동생 가족이나 아는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내가 고객으로 갔던 백화점에서 반대의 입장으로 있기도 싫어서 일부러 먼 곳을 선택했다. 이제 내가 중년에 들어 날 채용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지원후 일주일 넘게 연락이 없다가 토요일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고도 2주가 지나 다시 연락이 왔고 9월부터 일을 하고 있다.

 

날 채용한 점장은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성향의 사람이었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우선, 판매 경력은 있으나 가구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나에 대해 걱정이 없었고 모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가구 판매 초보인 내게 아직 인센티브는 없으나 그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모로 생각을 해주었다. 

 

기존에 일하시는,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오래된 판매 직원이 내가 열심히 설명하고 고객을 응대했음에도 주문과 결제의 순간에는 끼어들어 실적은 자기 것으로 돌리는 것. 실적과 무관한 잡다한 일들은 나에게 시키는 것에 대해 점장이 제재를 했다. 내가 허리가 좋지 않아 힘들어 할 때는 조퇴도 시켜주었다. 

 

돈을 주고 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 대부분은 인색했던 고용주들과 관리자들을 겪어 왔던 지라 아직까지는 점장에게는 고마움이 크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점장도 그들처럼 변할 수도 있으니 아직까지라고 하겠다.

 

주말에만 일하는 나는 사실 인센티브를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평일부터 일하고 있는 직원과 점장이 아무래도 더 가능성도 높고 경력과 단골도 많아 그들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본급이 있고, 이 기본급을 받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객에 대한 친절함과 성실함은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편견을 갖지 않고 모든 고객에게 진실되게 행동하려 한다. 사실 처음에는 인센티브 욕심이 생겨 과하게 행동했는데 스스스로 힘들고 판매로 이어지기도 어렵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고객이 필요한 것, 대부분 적당한 가격과 좋은 품질 제품을 권해드리며 가구 특성상 가격대가 있고 오래 사용해야 하기에 충분히 다른 곳도 알아보고 결정하시라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어느새 마음이 변질되었다. 인센티브도 못 받고, 목 아프게 설명하고 응대했는데 그냥 가버리고,  아예 사지도 않을 마음으로 와서 소파와 침대에 눕고 쓰레기만 남기고 가버리고, 신발 신고 소파에서 뛰는 애들을 그냥 두고...결국에는 돈과 무관한 고객들이 보이자 괜히 힘 쓰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편견이 자리잡은 것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잣대로 고객들을 판단하고 다르게 응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불친절하게 한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라. 친절해야 나중에 욕을 들어도 나 자신을 변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성실함이 빠진 것이다. 

 

일요일이었던 어제, 살 것 같은 여성 고객 여러 명이 나를 거쳐갔다. 그러나 그들은 사지 않았다. 살 것 같은 고객이라 참으로 친절하고 성실하게 제품을 설명하고 질문에 답변도 했건만 결국 결제하지는 않았다. 

 

힘이 쪽 빠지던 그 때, 멀리서 보아도 허름한 행색의 노부부가 들어왔다. 그때 나를 포함해 나보다 경력 많은 직원과 점장 모두 있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분들에게 먼저 다가서지 않았다. 내가 그분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 안도했다. 그런데 이때 다른 고객 여러 명이 매장에 들어왔다. 다른 직원과 점장은 일제히 그들에게로 향했다. 

 

어찌해야 할까? 그냥 멀리서 노부부를 지켜만 볼까? 

순간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나 이사를 앞두고 부모님과 함께 가구를 사러 갔던 때가 떠오르며 그분들에게로 몸이 움직였다. 

그래, 팔 생각은 접고 우리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말해보자 하며 다가섰다.

 

"고객님 식탁 찾으세요?"

식탁 의자에 앉지도 못하시고 비스듬히 기대어 식탁 위만 만지고 계신 그분들께 여쭈어봤다.

"이건 얼마예요?" 

백만 원대의 가격을 말씀드리니 가격을 물으신 할아버지의 안경 너무 눈이 커지고 할머니는 입이 벌어지신다.

그래서 저렴하게 나온 원목 식탁 세트로 자리를 옮겨 앉아 보시라고 하고 가격과 사양을 말씀드리니 좋아하지는 않으신다. 좀 더 알아 보고 싶다고 하시길래 바로 아래층에 다른 가구점도 있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사실 분들이 아니라 생각했기에 전혀 아쉽지 않고 홀가분했다.

 

그분들이 떠나고 젊은 부부가 들어와 식탁을 찾아 열심히 설명드렸다. 살 것 같은 고객 같아 보였고, 나만 하나도 팔지 못한 상황이라 간절했다. 그러나 그들은 사지 않았다. 

 

하나도 못 팔고 가겠구나 하며 마음을 접고 있을 때, 그 노부부가 다시 돌아오셨다. 팔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없었지만, 왜 돌아오셨는지 궁금했다.

 

"다른 곳도 보셨어요?"

"봤는데, 더 비싸네" 하며 할머니가 숨을 고르신다. 

"돌아보시느라 힘드시죠? 여기 우선 앉아계세요"

팔겠다는 마음이 사라지니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백화점에 함께 가서 뭘 사드리려고 하면 가격에 놀래서 매장에서 급하게 나오거나 1시간도 못 되서 어디 앉아 쉬고 싶다는 우리 엄마. 나도 이제 중년이 되고, 허리 디스크 때문에 고생하니 앉을 곳부터 찾게 되니 할머니가 안 되어 보였다. 

 

할머니가 의자에 앉고, 할머니가 권하니 할아버지도 따라 앉으신다. 두 분 다 힘드셨는지 숨을 한참 고르시더니

"이 의자도 식탁 의자예요? 이건 뭔데 이리 편해요? "

"네 식탁 의자예요. 편하죠? 저희 매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의자예요. 앞에 식탁은 세라막이고 요즘 다들 이걸로 하세요"

"다 이걸로 해요? 좋아요?"

"그럼요. 세라막은 항균에, 내구성도 좋고, 뜨거운 냄비도 그냥 올려놔도 되고, 착색도 안되요"

"김치국물도 물 안 들어요?"

"네. 그래서 어머님들이 세라믹으로 많이 바꾸세요"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이거 좋다며 이걸로 하자고 하신다. 할아버지는 집에 놓기는 조금 크다며 작은 것은 없냐고 하신다. 세라믹 식탁에서는 이게 가장 크기가 작다고 하니 두 분이서 이야기를 한참 나누신다. 처음에 오셨을 때와는 다르게 할머니가 식탁을 집으로 들이자며 말씀이 많아지신다. 할아버지가 깍아줄 수 없냐고 하신다. 세라믹 식탁에서 가장 저렴하고 5% 할인되고 의자는 30% 할인해서 더 이상 깍아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리니 다시 할머니를 바라보신다. 

 

"사요. 사~ 이게 가장 저렴하다잖아요" 할머니 목소리가 커지신다. 

"네~ 이게 가장 저렴해요. 세라막 식탁 중에서는. 세라믹 식탁은 오래 쓸 수 있어서 좋아요."

망설이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잡기 위해 나도 끼어들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다시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날 본다.

"주문 결제해드릴까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눈을 한 번 마주치시고는 그럽시다 하신다.

 

자리를 옮겨 전산으로 다시 한 번 제품을 보여드리고 할인률과 식탁, 의자의 합산 가격을 확인해드리고, 배송을 위한 고객 정보를 확인했다. 

"기존에 쓰시던 식탁 수거해드릴까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식탁 없어. 처음 사 보는 거야"

"처음이요?"
"응. 살면서 식탁 같은 거 없었어"

"그럼 식사하실 때는 상 펴서 쓰신 거예요?"

"그렇지. 이제는 다리가 아파서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어서 사는건데 이렇게 비싼지 몰랐지"

"그러셨구나.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분들의 행색을 보고 넉넉하지 않은 생활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첫 식탁을 사러 오셨다니 마음이 짠했다. 모두가 다 식탁을 갖추고 사는 것도 아닌데 난 왜 섣불리 단정짓고 그분들을 대했을까.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과 죄송함이 일었다. 

 

계약서를 출력해 보여드리니 할머니는 "글씨가 너무 작아. 안 보여" 

우리 엄마가 또 생각나 자세히 설명드렸다. 설명후 할머니가 성함과 서명을 기재하셨다. 카드로 결제까지 마치고 나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비싼 거 샀는데 뭐 없냐고 하시길래 간식으로 챙겨둔 초코렛을 드리려고 하니 농담이라며 웃고 넘어가신다. 자리를 일어서며 할머니는 아드님께 전화를 해 식탁 잘 샀다고 하신다. 그 말씀에 부디 좋은 식탁이길, 그분들께 좋은 식탁이길 바랬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겉모습을 보고 살 사람인지 아닌지 안다는 경력 많은 직원과 점장의 말에, 행색이 허름한 사람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그들의 행동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그렇게 하지 안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고 만 것이다. 부끄럽다는 마음과 함께 앞으로는 욕심은 내려두고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 앞서니 못난 마음이 생기고 못되게 행동하니, 결국에는 내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생애 첫 식탁을 산 노부부. 내일이면 받는데, 부디 오랫동안 그분들께 편안함과 기쁨을 주는 식탁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