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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abucks 알바벅스, 시급인생 알바경험 공유

이제 더 이상 주말에 가구 팔지 않아요

by 델몬트고모 202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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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렸다. 다른 말을 생각해봤지만, 짤렸다가 맞지 않을까? 나를 주말 알바로 고용한 가구매장 점장은 어제 나를 불렀다. 반가웠다. 왜냐하면 10월에 들어서면서 나는 이 일이 하기 싫었다. 지난 번에 노부부에게 생애 첫 식탁을 판매하며 반성하고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지만 계속 하기는 싫다는 생각이 강했다. 주말 이틀만 하면, 일주일에 2번만 참으면 된다며 버틸 궁리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전에 했던, 전화상담 일보다는 나은 점을 생각했다.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욕을 들을 일도 없고, 백화점이라는 편안한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 나를 떠올렸다. 그럼에도 나는 점점 이 일이 하기 싫어졌다.
 
가구를 파는 게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다. 점장이 나를 채용한 이유다. 그런데 판매가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10년 이상 일한 선임 직원과 점장을 따라잡을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고객, 내가 성실하게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견적을 봐드린 고객을 뺏어가는 건 어찌 할 수 없다. 그래서 난 욕심을 버렸다. 욕심을 버리니 적극성은 떨어졌다. 그걸 점장은 놓치지 않았다. 뱀의 눈을 가진 점장. 그걸 내가 모를리 없다. 관상은 진심 과학이다. 외모부터 말투까지 보통 아닌 아줌마라 생각했던 선임 직원, 구렁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내가 정성 들인 고객 뺏어가 실적 올리기 선수였다. 뱀의 눈을 가진 점장은 실적 뺏기는 하지 않았으나 자신의 주머니에서 내 월급이 나감을 매우 강조했다. 
 
선임 직원의 실적 뺏기와 점장의 눈치, 그러나 관둘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주말에 일을 해야 하고 남의 돈 벌기는 쉽지 않은 것이라며 마음을 다 잡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황당한 일이 생겼다. 선임 직원은 내가 알바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판매 실적을 올리려 그러는 것인지 매장을 비울 만한 잡입을 나를 시켰다. 내 이름을 부르며 놀면 뭐하냐 이거라도 해야지 하며 상품권 받아와라, 입금해라 등 잔심부름을 시켰다. 나보다 오래 일하고, 판매 실적도 좋아 점장도 눈치 보는 그 아줌마와 적을 지고 싶지 않아 순순히 했다. 사실 판매에 자신 없는 나로서는 매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속 편했다. 
 
그런데 그걸 점장이 보더니 나를 불러 자신이 나를 고용했고 자시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간다 강조했다. 선임 직원도 자신이 고용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와 선임 직원 모두 실적을 올려야 자신의 돈이 아깝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함께 갈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그 일을 원해서 한 것도 아니고, 선임 직원이 시켜서 한 것인데 왜 나에게 뭐라고 하는지 황당했다. 그러나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우선 점장과 얼굴 보며 이야기를 오래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따지게 되면 선임 직원 아줌마까지 개입해 시비를 가리자며 싸움판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싫었다. 내가 알겠다고 하니 점장은 미안했는지 선임 직원과 친해서 대신 해주는 것도 좋으나 실적이 따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자의로 한 일이 아니며 선임이 시키는데 안 된다고 할 수없는 제 입장도 이해해달라고 하니 점장은 이번에는 선임 직원을 탓한다. 
 
이 일 이후, 선임 직원과 점장 눈치를 보며 일했다. 어차피 내가 고객에게 설명을 열심히 해도 선임 직원이 본인 실적으로 가져갈 것이니 고객 응대에 적극적이지 않게 되었다. 선임 직원에게는 내게 판매 외의 잡입을 시키지 말라고 따끔하게 경고를 줄 것이라고 했던 점장은 선임 직원에게 누나 누나 하며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희희낙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념무상이 되었다. 점장은 이걸 놓치지 않았고 어제 날 부른 것이다. 또 자신의 주머니에서 내 월급이 나가는 것을 강조하며 다음달에 천만 원 실적을 올리면 성과급 50만 원을 주겠다고 한다. 실적 올릴 자신 없으면 오늘까지 하고 정리하자고 한다. 그래서 자신도 없지만, 선임 직원이 고객과 실적 뺏는 부분, 선임 직원이 나에게 시킨 잡일로 점장에게 쓴소리 들은게 나로서는 황당했며 그만하겠다고 했다. 점장은 내가 그만둔다고 하니 조금 당황하는 듯 했다. 내가 성과금에 혹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할 줄 알았나 보다. 
 
하기 싫은 내 마음을 알아채서 먼저 날 짤라 준 점장이 고맙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지만 미운 마음은 없다. 내게 선택권을 주고 그 선택을 하지 않은 건 나니깐. 
 
9월 첫주 주말부터 10월의 마지막 주말까지 딱 2개월. 흔히 말하는 수습기간 3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나는 주말 일자리를 잃었다. 이번 주말은 부모님 이사로 서울을 떠나니 잠시 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