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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abucks 알바벅스, 시급인생 알바경험 공유

돈의 쓴맛, 의류하차 새벽작업

by 델몬트고모 202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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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33분, 오목교역.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일하러 왔습니다. 2시간 일하고 일당 4만 원. 의류 검수 및 포장, 상차는 해봤지만 하차는 처음입니다. 지난주의 뻘짓과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어제 알바몬에 들어가 부지런히 찾았고 이 일에 지원했습니다. 

 

네이버지도상으로는 도보 1시간으로 나왔지만 4시에 출발해 4시 33분에 도착했습니다. 역시 저는 걷기 능력자입니다. 걷기만큼 다른 일도 재빠르게 멋지게 해내고 싶지만 그렇지 않아 많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어제 평일 알바 면접을 보고 그 자리에서 같이 일하자고 해 적잖이 당황하고 고마웠습니다. 이제 중년의 저는 구직 시장에서 나이에 밀립니다. 평일 알바 면접과 합격, 다시 다른 돈벌이가 생겨 다행입니다.

 

2시 30분 퇴근 후 집에서 멍 때리고 먹기만 하는 제가 참으로 한심해 밤일을 다시 시작하고자 했으나 날밤 세는 것은 이제 감당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뼈저린 자각 후에는 후회와 자괴감. 부모님 집 이사로 이틀을 보내고 이틀은 다시 자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정신 드니 다시 불안감이 저를 잠식합니다. 월급 하나만 보고 있기에는 제가 돈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아니 돈으로 해결할 일들만 있는 것 같습니다. 

 

취미가 없습니다. 있다면 돈 안 드는 걷기와 글쓰기. 걷고 나면 글에 대한 영감이 막 떠오르고, 글을 쓰다 보면 위로 받고 긍정적인 기운이 생깁니다. 

 

돈 버는 알바도 취미입니다. 놀면 뭐하니? 저는 돈 벌 곳이 없나 생각합니다. 사업이나 투자를 통해 제가 잠을 잘 때도 돈이 벌리는 재주가 제게는 없습니다. 그러니 놀 시간에 돈 벌어야죠. 이전에 비하면 현저히 일도 줄었고 그만큼 소득도 줄었지만, 저는 여전히 돈 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나이와 체력에서 우위에 있지 않으니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회가 이전만큼 오지 않습니다. 솔직히 저도 돈 버는 것이 중요하고 간절하나 현실적인 이유, 몸과 머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기회가 와도 거절합니다. 이전의 저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전의 저는 어떠했냐면, 1시간 일하고 만원을 벌더라도 새벽에 일 끝나고 걸어가서 했던 사람입니다. 새벽 4시에 일이 끝나는 곳이 등촌역 인근이었고 1시간 일하고 만 원 주는 곳은 홍대입구역 근처였고 일은 새벽 6시에 시작했습니다. 애매한 2시간의 간극, 운동한다 생각하고 걸어 갔습니다. 그때는 참으로 독했습니다. 아파트 입주 못할까봐 겁도 났고 제게는 꿈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파트 분양받고 입주까지 3년을 남겨주도 참으로 많은 알바를 했습니다. 투잡, 쓰리잡, 포잡까지 해봤습니다. 평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배달주문어플 콜센터 전화상담을 고정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알바몬을 들여다보며 일을 찾았습니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다른 콜센터에서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전화를 받았습니다. 참으로 살면서 그렇게 욕과 짜증, 모욕적인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특별한 기술이 없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아파트 입주까지 참는다하며 버텼습니다. 그때 제 삶은 평일과 주말을 나누어 고정적인 일을 잡아 하고, 다시 평일과 주말 비는 시간에 할 수 있는 비정기적, 일회성 알바를 찾아 했습니다. 주로 전화와 관련된 상담 일이었고 마트 입점 전 물건 정리와 청소, 목욕탕 청소, 스크린 골프장 마감, 호텔 조식 서빙, 동대문시장에서 속옷 판매, 남대문 시장에서 아동복 포장 , 부동산 업무 보조 등. 기술 없이 용기와 체력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그 일들을 하며 제게 돈을 주는 고용주와 그 고용주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많은 고객들을 만났습니다. 좋은 사람도 있었고 나쁜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들 덕에 돈을 벌었고 계획대로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 입주와 매도. 태어나 처음 살아본 아파트이자 새집. 군에 있을 때 새로 지은 장교 숙소에 산 것 빼고는 다 헌집에서 살았습니다. 새집 참으로 좋았습니다. 직장만 그 아파트 인근에 있다면 좋았겠지만 인생이 어찌 그리 쉽겠습니까. 용인에서 서울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하며 1년 보내고 팔았습니다. 나의 소중한 첫 아파트를 말이죠. 입주할 때는 마이너스피까지 있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금액까지 금새 오르더니 결국 팔았습니다. 이후에는 더 올라서, 분양가의 2배까지 올랐고 그걸 본 저는 몇일 방황하며 보냈습니다. 그 이후 그 아파트를 네이버부동산에서 절대 보지 않습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절대 안 봅니다. 

 

어쨌든 그 아파트 팔아서 1억이라도 벌었고 그 돈을 기반으로 주식해서 결국 서울에 다시 자가를 마련했습니다. 서울 자가를 마련하며 부동산담보대출을 받았고 변동 금리를 선택한 저는 결국 2년 8개월만에 조기 상환했습니다. 더 이상 제 통장에서 대출원리금이 빠져나가지 않고, 제 아파트 등기등본에 근저당설정이 없어지니 살만 났습니다.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알바를 찾아도 해보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면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게 능사는 아니라는 거, 이직 많이 한 저는 압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빨리 관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합니다. 포기가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포기해서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것은 빨리 정리하고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저는 그랬고, 더 이상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는 받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한심할 뿐이죠. 그래도 회복력이 이전보다는 빠릅니다. 저는 일을 통해 다시 회복합니다. 아니다 싶어 관둔 알바 대신, 괜찮다 싶은 할 수 있는 알바를 찾습니다. 그래서 평일 알바는 찾았습니다. 집 근처이고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쉬다가 일하러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할만한 일인지. 

 

주말은 다음주 면접을 앞두고 있습니다. 됐으면 좋겠습니다. 전기바이크 회사에서 했던 원격 제어와 전화상담 일과 유사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 지원했습니다. 회사 위치도 걸어서 다닐 수 있습니다. 면접 관련 회사 담당자와 통화하며 제가 2시 30분까지 일해 오후 4시에 면접 가능하다고 하니 일정도 조율해주고 문자로 정리해 보내줘 느낌이 좋습니다. 

 

평일 알바는 다음주 월요일부터, 주말 알바는 아직 미정. 그때까지 뭐하겠습니까? 알바를 찾아 돈을 벌어야죠. 그래서 어제 알바몬 단기알바를 부지런히 찾았고 오늘 오전 5시부터 7시까지 하는 의류하차 알바를 하기 위해 오목교역에 왔습니다. 그런데 남자만 있습니다. 약간 불안합니다. 이 불안함은 결국 알바생 출석을 체크하며 분명해졌습니다.

 

"여자분이세요? 어...많이 힘든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돈 벌기 위해 새벽 4시부터 걸어서 이곳까지 왔는데 괜찮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겠습니까? 분명 채용공고에는 학력, 경력, 성별, 나이 무관이고 채용 담당자와 문자를 주고 받으며 제가 나이 있는 여자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억울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여자라 안 되겠다고 돌려보내면 어떻게 하나 싶은데, 목장갑을 줍니다. 제 몸보다 더 큰 행거를 나르라고 합니다. 지상에서 지하철 상가 안까지, 5호선은 참으로 깊습니다. 계단이 엄청나죠. 그 계단을 행거와 마네킹을 이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길를 반복했습니다. 돈이고 뭐고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버텨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파벳 씨와 발가락의 발을 조용히 뱉으며, 꼭 4만 원 벌테다 하며 버텼습니다. 채용 공고에는 분명 소포장의 의류만 내려주면 된다고 했는데 행거와 마네킹, 대형 박스를 동굴 같은 지하까지 내렸습니다. 다행히도 허리 복대를 하고 온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알바취미자로서 짬입니다. 나중에는 대형박스는 힘 쓰지 않고 계단을 미끄러지게 가게 해 아직 내가 일머리가 있구나 하며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6시 33분. 매대에 옷 정리까지 마치니 끝났다고 부릅니다. 내게 여자가 할 수 있냐며 , 일부러 그러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무거운 행거와 옷꾸러미를 건넨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만원 다발을 꺼내 돈을 나눠줍니다. 4만 원. 허리 디스크 환자이자 나이 많은 여자가 1시간 30분동안 버텨내서 번 돈입니다. 

 

역대 최고 난이도의 알바였지만 30분 일찍 끝났고 바로 돈을 받으니 다시 힘차게 걷습니다. 집을 향해서. 그리고 다시 일하러 가야 합니다. 집으로 가는 길, 아직도 어둡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어둡지 않습니다. 4만 원을 벌었다는 것보다 제가 버텨냈다는 것이 기쁩니다. 인내와 고통의 끝은 기쁨과 자신감입니다. 이렇게 힘든, 같이 일한 남자들도 숨을 헉헉 거리며 힘들었던 했던 일을 이 나이 많은 여자가 해냈습니다. 세상이 조금은 만만해 보입니다. 다시 밤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교육을 받고, 이후 포기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한심함이 공기 중으로 날아갑니다. 

 

집에 도착해 다시 일하러 가기 위해 씻으며 옷을 벗으니 오른쪽 다리가 피멍이 들었습니다. 팔이 얼얼해 들기도 힘듭니다. 오늘 받은 4만 원 중에 2만 원은 병원비로 나갈 듯합니다. 이럴 줄 알고 병원 물리치료를 미룬 것은 아닌데, 이제 갈만한 확실한 이유가 생겼으니 가야죠. 병원비 벌기 위해 알바를 한 것은 아닌데, 병원비보다 많이 벌었으니 손해는 아닙니다. 

 

씁니다. 돈을 맛볼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지만, 오늘 한 의류하차 작업은 돈이 쓰다는 생각을 들게 했습니다. 돈이 쓴 게 아니라, 일이 많이 힘들었고 그걸 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그 시간들이 고달프기 때문이겠죠. 

 

고달팠지만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과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몸이 다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날밤 세는 일과 몸을 쓰다가 다칠 수도 있는 일들, 앞으로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시간이 널려 있어도 공부하지 않으니 우선 열심히 일하며 돈 벌자. 그리고 틈틈이 공부하자. 

 

 

오전 5시 33분. 새벽 의류하차 작업하러 왔다. 오목교역.

10분간 휴식. 버텨낸 흔적들이 옷 곳곳에 묻어 있다.

40만 원 받았으면 집까지 뛰어 갔을텐데... 4만 원 받고 걸어가고 있다. 집을 향해.

힘든만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 귀하게 여겨진다. 내 키보다 큰 행거와 마네킹에 치여 죽을 뻔했어.

4만 원 때문에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절대 아니다. 걷기능력자의 힘찬 걸음

어두운 골목길을 비춰주는 가로등 불빛, 내 삶의 가로등은 뭘까? 우선은 일과 돈이다.

버티느라 고생했다. 내 몸.

오전 8시가 안 되었는데도 이미 만보 채우고 이만보 향해서 다시 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