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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abucks 알바벅스, 시급인생 알바경험 공유

albabucks, 골프는 몰라도 부자는 알았다.

by 델몬트고모 202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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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상담으로 주업과 부업을 정착하기 전 했던 여러 알바 중의 하나가 스크린 골프장. 그 전까지, 알바가 끝난 이후에도 가보지 않았으니 6개월간 일했던 그때가 처음이자 나의 마지막이었다. 카운터부터 청소, 고객 심부름, 사장 강의 듣기까지 너무나 많은 일을 해서 정확히 나의 직무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매장 관리와 고객 응대를 전담하는 매니저 보조라고 했다. 이용 전 골프룸을 바로 고객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세팅하고, 이용 후 룸를 청소 환기하는라 바빴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나중에는 생각지 않은 일까지 시켜 적잖이 당황했지만, 주 업무는 고객 안내와 청소였다. 다행히도 건물 내 화장실이 따로 있고 그 부분은 건물 관리에 속해 화장실 청소는 제외였다.

 

골프는 몰랐지만, 당시 시급이 5천 원대였는데 시급 8000원과 식대 지원은 좋은 조건이라 지원했다. 당시에는 주업이 직원 6명이 전부였던 무슨 협회 대외협력 담당이었는데 한가해서 지루한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곳인데, 지역 유지들 상대하기도 버거웠고 나 외에는 지인을 통해를 입사한 직원들이 싫었다. 한가하니 야근도 없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면, 아니 6시가 되길 1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퇴근 준비를 할 정도로 일이 없었다. 참으로 좋은 곳인데 왜 나는 그곳을 나와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싶다만 어쩔 수 없으니 넘어가자. 6시 퇴근 후 할만 한 일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에 자기계발하거나 했으면 지금의 나와는 달랐을텐테 싶다만, 그 또한 어쩔 수 없으니 생각만 하자. 당시에는 사람과 시간, 삶의 즐거움보다는 돈이었다. 사람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돈은 날 떠나지도 배신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돈을 버는 시간동안은 고민이나 지난 후회들 때문에 괴롭지 않을 것 같았다.

 

지원했던 스크린 골프장은 근무시간이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였다. 걸어서 2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 새벽 2시에 퇴근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원 후 3일이 지나서 연락이 왔다.  지원시 관련 경력이 없으니 집이 가깝다는 점을 강조했더니 사장도 대뜸 집이 정확히 어디냐고 물었다. 집 위치를 이야기 하니 자기가 갔던 모 정형외과 근처네 하며, 관련 경력이 없어 망설여진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으니. 생각보다 긴 통화 끝에, 다음날 와보라고 했다. 오후 2시에 올 수 있냐고 해서 주간에는 직장이 있어 오후 6시 이후 가능하다고 하니 그럼 7시에 와보라고 한다.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 감이 안 오는 사장의 권위적이고 친절하지 않은 말투가 신경 쓰였으나, '어차피 퇴근후 집에 가야 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 들리면 되고, 안 되도 집에 다시 걸어가면 그만이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퇴근 후 직접 찾아가보니 집에서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평소에도 다니던 길에 있었다. 골프도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 그곳에 스크린골프장이 있는지 몰랐다. 오피스텔 건물의 지하 2층에 있었다. 지하에 있어 나도 모르게 위축되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꽤 크고 밝은 내부가 보였다. 그리고 카운터에 글래머 체형의 화려한 외모를 가진 여성이 서 있었다. 전화로 만났던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 모를 사장을 상상하다가 반전의 인물을 만나니 당황스러웠다.

 

"저 알바 면접 보러 왔습니다."

"아. 누구씨. 기다려보세요"

반전의 인물은 다행히도 친절했다. 잠시후, 대머리 회색 양복 아저씨가 나왔다. 할아버지는 아니었고, 50대 후반의 아저씨로 보였다. 손짓으로 이리 오라 해서 따라가니 작은 사무실이 나왔다. 다시 손짓으로 앉으라고 했다. 내 엉덩이 반쪽만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빨간색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별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하루 전 나눴던 통화와 비슷한 질문과 답이었다. 사장은 사람을 상대하는 영업이라 친절해야 한다며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선택권 없는,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의 나는 듣고만 있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저울질 하는 질문에 지쳐갔다. 하고 싶었던 마음이 하기 싫음으로 변해갔고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아 사장이 나의 성격을 묻길래, 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돈을 좋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을 할 때는 친절하지만 상냥하거나 애교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약간 놀라면서도 내 대답이 재미있는지 웃었다. 역시 군 출신이라 당당하고 씩씩하다며 내일부터 나올 수 있냐고, 주말도 가능하냐고 물었다. 가능하다고 했다. 주말 전담 알바가 있다며, 우선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자고 했다. 무경력자이지만 시급도 그대로 적용하고 식사는 법카로 7천 원까지 지원해준다고 엄청 생색을 냈다.

 

금요일 면접을 보고 월요일을 기다리며 주말 내내 고민을 했다. 막상 일을 구하고 나니, 그 일이 주는 돈과 이점보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골프에 골자도 모르는데...할 수 있나? 대머리 사장 엄청 깐깐한 것 같은데...' 

 

해봐도 후회, 안 해봐도 후회. 알바는 그렇다.  그래도 해봐야 이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할 수 있고 후회해도 돈은 남는 해보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대머리 사장을 보니,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고 까다로워 내가 일을 못하면 알아서 짜를 것 같았다. 해보고, 했는데도 못해서 짤리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안 해보고, 안 해서 생기는 불안보다는 해서 몸과 마음으로 아는 것이 낫지 않은가?

 

월요일 오후 6시, 회사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거리가 있었기에 바람보다 빨리 나가서 바람보다 느리게 그러나 경보하듯이 빠른 걸음 유지. 다행히도 타야 할 버스가 바로 왔다. 나보다 더 빠르게 나온 인간들이 많은지 버스는 벌써 사람이 가득, 그러나 대부분 환승을 위해 강남역에서 하차해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보통은 자리에 앉자마자 잠드는데, 역시 알바 첫날이라 긴장되는지 잠이 오지 않았다. 1시간 내 도착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었다. 한남대교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남산 터널을 을 나오기까지 30분 넘게 소요되어 불안했다. 첫날부터 지각하는 건 알바의 직업윤리에도 어긋나고, 지각으로 짤려도 할  말이 없다. 

 

다행히도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 그런데 손님이 많아 나라는, 알바 첫 날인 나라는 존재는 30분동안 방치되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쉼없이 들어왔다. 다들 예약을 한 것인지, 아님 얼굴만 봐도 아는 단골인지 사장과 매니저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그들을 안내했다. 어느 정도 손님이 정리가 되었는지 사장은 매니저에게 일을 맡기고 날 불렀다. 면접을 봤던 사장실로 다시 들어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손님 응대부터 청소까지 매뉴얼이 정리되어 있었다.

 

'역시 깐깐하구나' 청소 순서까지 정리가 되어 있는게 신기하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첫날은 사장을 따라 다니며 청소 매뉴얼을 익히는데 시간을 대부분 보냈다. 걱정했던, 손님 응대나 결제는 없었다. 청소는 크게 어렵거나 힘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장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매뉴얼에 따라 순서를 지켜가며 해야 해 신경이 쓰였다. 청소기 2번과 물걸레 청소 1번, 매뉴얼에 나와 있던 대로 물건 위치 잡은 후 소등. 특히, 사장은 소등을 강조했다. 청소기도 쓸데없이 여러번 돌리지 말고 2번 매뉴얼에 나온 방향대로 하라고 했다. 청소가 끝난 후, 뒤를 돌아보고 꼭 불도 끄라고 강조에 강조를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은 100평대의 스크린골프장을 임대가 아닌 본인 소유로 운영하고 있었다. 즉 누군가의 사무실을 빌린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본인 자산이었다. 사는 곳도 타워팰리스였다. 스크린골프장은 부업이고, 부동산 경매와 임대사업이 주업이었다.  청소 매뉴얼까지 만들고, 청소기 돌리는 방향과 횟수까지 정한 것을 보고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엄청난 부자인 줄은 몰랐다. 그의 행색이 내가 생각해왔던 부자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명품은 없었고 차도 소나타였다. 옷도 단벌신사에 가깝게 회색 양복이 다였다. 나중에 주말에도 일하면서 가끔 사장의 부인과 일을 하게 되었는데, 부인은 차도 벤츠였고 옷 가방 모두 명품에, 시술한 얼굴을 빛내고 있었다. 그런 부인을 보고서는 부자는 부자인가보다 했다. 

 

청소 매뉴얼 익히기로 시작한 스크린 골프장 알바는 손님 응대와 안내, 야식 간식 주문 대신하기로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그 중 나는 청소와 설거지가 가장 편했다. 왜냐하면 사람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서. 스크린 골프장을 찾는 손님들 대부분은 회식이나 접대로 법카를 쓰러 왔다. 단란한 주점이나 술집에서 법카를 쓰면 문제가 되지만, 스크린 골프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지 참으로 큰 금액을 잘도 썼다. 조리한 음식을 팔 수는 없었지만, 술과 안주는 팔 수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나 불법은 아니었다. 골프장 이용료보다 술과 안주를 팔아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았다. 

 

평일에는 주로 회식과 접대를 위한 법카 손님들이 주를 이루어 청소와 설거지가 많았다. 남자 알바생 1명과 함께 부지런히 청소하고 설거지 하다 보면 곧 자정이 되었다. 자정이 되면 거의 손님들도 정리하고 가는 분위기라 매니저와 사장도 퇴근한다.  이후 퇴근하는 2시까지는 눈치 볼 사장도, 나보다는 상사인 매니저도 없어 알바생끼리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 빼고는 알바생 2명은 남자였고 모두 나보다 어려 날 누나라고 하며 잘 도와줬다. 술 취해서 기분 좋아진 손님들이 야식을 사주기도 하고, 큰 돈은 아닌데 팁을 주기도 했다. 

 

새벽 2시, 일을 끝내고 집으로 걸어갈 때 힘들기보다는 뿌듯했다. 월급 외에도 다른 소득원이 있다는 것과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장은 세금 문제로 알바비를 금요일마다 정산해서 현금으로 줬다. 금요일 정산받은 알바비를 가방 깊숙이 넣어 집으로 돌아가던, 토요일 새벽 2시 이후,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참 기분 좋았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일주일 잘 버티고 해냈다는 안도감과 용돈이 생긴 것 같아 설레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좋은 감정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이 골프를 쳐달라는 사람, 술 취해서 반말하는 사람, 결제 빨리 안 한다고 알바 짜르라고 소리 지르는 사람...돈 받고 하는 일이라 참아야 했다.

 

나중에는 주말에도 일을 했다. 주말 전달 여직원이 있었는데, 그 여직원 대타로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한 적도 있다. 혼자서 하지는 않았지만, 쉼없이 움직여야 했다. 주말은 평일과 달리, 혼자 또는 둘이서 골프를 치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회식 접대를 위해 오는 게 아니라, 스포츠와 여가를 위해 찾으니 조용하고 깔끔하다. 저녁 때가 되면 이들 무리에 누군가 들어와 분위기가 달라지지만, 주말은 대체로 조용하고 할 일도 적었다. 

 

6개월 정도 하니, 자전거 타듯이 몸에 익혀졌다. 그러나 대머리 사장은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생각대로 까다로웠고, 돈 관련된 일은 매우 예민했다. 

 

'역시 부자가 괜히 된게 아니구나'  사장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타워팰리스 살고, 건물도 여러 채 있어 임대소득이 천만 원 단위라고 들었다(사장 부인이 나에게 이야기 해줘서 알았다). 분명 엄청난 재력가임에도 그는 돈을 절대 함부로 쓰지 않았고 모든 걸 계획하고 썼다. 세금 문제로 알바비도 현금으로 줬고, 식대도 꼭 법카로 7000원만 결제하게 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손님이 남긴 음식을 먹고, 폐기물 쓰레기 처리 비용이 아까워 새벽 몰래 버리는 일 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이해되지 않는 건, 골프를 가르쳐준다며 날 따로 불러내서 룸에 같이 있는 것. 나에게 화장을 하라며 돈이 없어서 화장품을 못사면 자신이 사주겠다는 말. 점차 사장이 부자라서 대단한게 아니라, 부자인데도 저렇게 치졸해 보이고 느끼하게 느껴졌다. 

 

나는 티가 나는 사람이다. 열심히 하는 티도 나지만, 싫어하는 티도 잘 난다. 돈에도 예민했지만, 사람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예민했던 대머리 사장. 내가 본인을 싫어하는 것 정도는 금방 알았고, 내가 싫어하는 일만 시키려고 했다. 내가 사람과 사장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있거나 하려고 하면 말리며 안내 데스크에 세웠다. 아니면 골프를 알아야 한다며 룸으로 불러댔다. 결국 내가 골프는 싫다,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몰라도 된다고 하지 않으셨냐고 하니 조용히 날 불러 날 해고했다. 

 

기쁜 해고였다. 해고한 그 날은 금요일, 알바비를 정산해주는 날. 퇴근 시간이 1시간 정도 남았지만, 사장은 알바비를 주며 그만 가보라고 했다. 나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1시간 남은 것까지 정산해줬다. 다시는 느끼한 사장의 골프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서, 술 취한 손님들 보지 않아도 되서 좋았다. 같이 일하며 웃고 떠들었던 알바생들은 아쉬웠지만, 대머리 사장의 느끼한 눈빛과 행동을 참을 만큼 내 비위가 좋지 않았다. 

 

지금도 골프는 별로다. 그때의 느끼함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 골프를 스포츠가 아닌 회식 접대의 수단으로 다루는 인간들을 봐서 그런 것 같다. 이후 스크린 골프장을 비롯해 술이나 접대가 들어갈 것 같은 알바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장의 취향과 선택, 결정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개인 업체에서도 일하지 않는다. 

 

기쁜 해고 이후, 이 알바는  생각나지 않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자주 생각났다. 알바보다는 사장이 많이 생각났다. 코로나로 해외로 골프 치러 가지 못하는 상황과 함께 골프를 취미와 운동 삼아 하는 인구가 늘어나 스크린 골프사업은 호황을 맞았다. 부동산도 급상승했다. 스크린 골프장을 운영하고 건물주였던 대머리 사장이 생각났다. 

 

'대머리 사장은 더 부자가 되겠구나.' 전기기술자였던 그는 80년대에는 남의 집 수리를 하며 부동산이 돈이 되는 걸 알고 경매에 뛰어들어 돈을 벌었고, 90년대에는 땅덩어리 작은 이 나라에서는 넓은 필드에서 골프 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스크린 골프장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그의 남다른 안목과 실천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폐업속출과 현금거지 등 모두가 힘들어하던 코로나 시국에도 자산이 몇배는 뛰었을 대머리 사장을 생각하니 부자는 하늘이 내려주지 않나 싶다.

 

코로나 이후 더 부자가 되었을 스크린 골프장의 대머리 사장. 그의 느끼함을 참아냈다면, 나도 뭔가 배우고 깨달아 부자가 되었을까? 씁쓸하다. 부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하늘이 내려준 이가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노력하지 않는가 보다. 나는. 지금은 다만, 부자는 아니어도 좋으니 가난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